책을 되새김질하다

새는 산과 바다를 이끌고

대빈창 2019. 2. 18. 07:00

 

 

책이름 : 새는 산과 바다를 이끌고

지은이 : 윤후명

펴낸곳 : 은행나무

 

소설가 Y씨는 예전에 시를 썼다고 한다 / 요즘은 안 쓰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 나는 그를 알고 있다 / 꽃을 가꿔 식물학자 흉내도 내고 / 술을 마셔 고래 흉내도 내며 / 세상을 거꾸로 보려 하지만 / 사랑이 그를 가로막는다 / 아무리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가도 / 사랑이 바로 보라고 꾸짖기 때문에 / 그는 늘 불안하다 / 불안이 그의 생명이다 / 그래서 꽃 피면 꽃 지면 한잔하자고 / 누구에게나 보챈다는 것이다 / 소설가 Y씨는 예전에 시를 썼다고 한다 / 헛소문일지도 모른다

 

「소설가 Y씨의 하루」(277쪽)의 전문이다. 2017년은 작가 윤후명이 등단 50주년을 맞는 해였다. 작가는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氷河)의 새」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10년 뒤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산역(山役)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이후 윤후명은 시인보다 소설가로 정체성이 더 강한 문인으로 살아왔다.

내가 윤후명을 처음 만난 책이 소설집 『원숭이는 없다』(민음사, 1989)였다. 안산공단 공장노동자로 밥벌이를 하던 90년대 초반 고잔동의 지하방에 살며, 작가의 장편소설 『협궤열차』』를 잡았다. 잔업이 없던 휴일, 장난감 꼬마열차 같았던 협궤열차를 타고 종점인 수원까지 갔었다. 작가의 산문집으로 유일하게 『꽃』(문학동네, 2003)을 손에 들었다. 199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중편소설 「하얀 배」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등단 오십주년을 맞아 《은행나무》에서 『윤후명 소설 전집』 12권이 먼저 완간되었다. 책은 윤후명의 시전집이었다. 『명궁(名弓)』(문학과지성사, 1975),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민음사, 1992), 『쇠물닭의 책』(서정시학, 2012), 『강릉 불빛』(서정시학, 2017)과 시집으로 엮이지 않은 근래의 시 「대관령」 연작까지 303편이 실렸다. 시집의 발표순으로 꾸려진 각 부의 머리에 「시인의 말」이 자리 잡았다. 말미는 출간 당시의 해설로 1부는 문학평론가 김종철의 「캄캄한 세계속에서의 완강함 - 윤후명의 시」가, 3부는 이숭원의 「영원한 사랑의 아픈 내력」이 실렸다. 2·4부는 당시의 시인의 심상을 엿볼 수 있는 산문 「희망과 절망의 노래」, 「강릉과 대관령의 헌화가獻花歌」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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