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서준식 옥중서한

대빈창 2019. 2. 25. 06:37

 

 

책이름 : 서준식 옥중서한

지은이 : 서준식

펴낸곳 : 노사과연(노동사회과학연구소)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서승의 『옥중 19년』,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윤철호의 『나는 겨울잠을 자러들어온 곰이로소이다』, 디트리히 본 회퍼의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 이 외에 산문집으로 김남주의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 김진숙의 『소금꽃나무』, 하종강의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송경동의 『꿈꾸는 자 잡혀간다』와 시집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프리모 레비의 『살아남은 자의 아픔』, 체 게바라의 『체 게바라의 시집』 등. 이 땅의 독재정권이 조작한 간첩단 사건으로 수감된 진보주의자들의 옥중 편지글 모음집과 망명생활 글, 노동운동가들의 투옥과정이 실린 산문집과 외국의 혁명가, 레지스탕스, 민중신학자의 에세이와 시집이다.  내 손을 거쳐 책장 한 귀퉁이를 차지한 책들이었다.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947쪽 분량의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은 마지막 책장을 덮기까지 근 한 달이 걸렸다. 책을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나의 가슴은 묵직한 납덩어리에 짓눌린 것처럼 숨이 가빠왔다. 서준식은 재일교포 2세로 1948년 일본 도쿄에서 4남1녀중 세째로 태어났다. 고교를 졸업하고 ‘우리 민족의 슬픔과 동떨어진 꿈나라의 삶이란 우리에게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슬픔과 똑같은 슬픔의 삶을 살 수밖에 없고 살아가야 한다’(147쪽)고 한국에 유학을 왔다. 서울법대 3년 재학 중 형 서승(서울대 대학원 유학 중)과 북한을 방문했다. 1971년 4월 3선을 노리는 박정희 정권은 서씨 형제를 체포해 고문으로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조작했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으로 서승은 무기징역, 서준식은 7년형이 확정되었다.

투옥된 서준식은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교도소의 가혹한 고문과 맞서 싸웠다. 1973 ~ 74년에 걸쳐 한국 전역의 교도소에서 비전향장기수에게 조직적인 전향강요 고문이 자행됐다. 잔인한 고문으로 정치범들이 살해되었다. 서승은 시뻘건 난로를 껴안았고, 서준식은 손목을 끊고 자살을 시도했다. 서준식은 7년의 만기를 살고, “사람의 생각은 누구도 규제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보안감호 10년을 더 살았다. 17년의 구속동안 옥중에서 양친을 잃은 슬픔을 당했다. 죽음을 걸고 3차에 걸친 재판투쟁, 51일간의 단식투쟁 등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1988년 5월 25일 17년간의 엄혹한 옥중생활을 이겨내고 석방되었다. 23살부터 40살까지 한 인생의 절정기를 외부와 격리된 감옥에서 육체에 가해지는 무자비한 고문을 이겨냈다. ‘비전향’으로 감옥 문을 나선 최초의 장기수였다.

책은 1972년 5월 12일자 여동생 서영실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되어, 1988년 5월 2일 고종사촌 강순전에게 보낸 편지로 끝을 맺었다. 내가 잡은 책은 두 번 절판되었던 책을 2008년 세 번째로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펴낸 저자교열판이다. 1984년 2월부터 1985년 6월까지 P선생님으로 호칭되는 어느 목사부인과의 예수·기독교에 대한 첨예한 논전을 벌인 15통의 편지가 추가되었다. 사회평론가 고종석은 표사에서 “시대의 을씨년스러움을 인간 존재의 눈부신 고귀함으로 승화시킨 한국 서간문학의 마천루”라고 평했다.

서준식은 출옥 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인권위원장을 맡아 진보운동의 최일선에 섰다. 운명적으로 91년 강기훈 유서대필조작사건을 만나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땅에 인권운동의 깃발을 꽂았다. 1993년 한국의 인권운동을 대표하는 〈인권운동사랑방〉을 꾸렸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그 시절부터 선생과의 보이지 않은 인연이 시작되었다. 91년 분신정국의 소용돌이에서 나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아스팔트 위의 노동자였다.  세월은 흘렀고 서해의 작은 섬에 정착했다. 〈인권운동사랑방〉과의 소중한 인연을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표지 그림은 전주교도소 문 앞에서 만기석방을 기다리는 어머니 오기순, 여동생 서영실의 1978년 5월 27일 사진을 재구성한 이미지였다. 한 달간의 책읽기였지만 무엇인가 아쉬웠다. 선생이 세상에 나온 이후 15년간의 진보주의자의 실천적 삶이 기록된 책을 어렵게 손에 넣었다. 책은 중고서적에서 나를 기다렸다. 『서준식의 생각』(야간비행, 2003)은 출판사가 문을 닫으며 일찌감치 절판되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0) 2019.03.04
얼굴  (0) 2019.02.28
씨앗 혁명  (0) 2019.02.22
새는 산과 바다를 이끌고  (0) 2019.02.18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0) 2019.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