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자두나무 정류장

대빈창 2019. 4. 25. 07:00

 

 

책이름 : 자두나무 정류장

지은이 : 박성우

펴낸곳 : 창비

 

표제 『자두나무 정류장』에서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 선생이 지은 화가이자 생태운동가 정상명의 춘천 ‘자두나무집’을 잠시 떠올렸다. 시인은 2006년부터 정읍시 산내면에서 컨테이너 생활을 하며 시와 농사를 지으며, 강의와 전통문화 관련 일을 해왔다. 자신의 고향이자 농경문화 전통이 살아있는 전북 정읍을 시적 공간으로 삼았다. 시인의 산골마을은 자두나무 정류장이 있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은 3부에 나뉘어 56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하상일의 「“별말 없이”도 따뜻하고 아름다운」이다. 투명하고 정갈한 언어로 산골 이웃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노래했다. 직접 농사짓고 이웃들과 알뜰살뜰 몸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을 아름다운 서정으로 승화시켰다.

 

사흘 눈발이 푹푹 빠져 지나갔으나 / 산마을 길에 찍힌 건, 노루 발자국이다 // 노루 발자국 따라 산에 올라갔으나 / 산마루에서 만난 건, 산마을이다 // 아랫녘 산마을로 곧장 내려왔으나 / 산마을에 먼저 당도한 건, 산이다 // 먼 산을 가만가만 바라보았으나 / 손가락이 가리킨 건, 초저녁별이다 // 초저녁별이 성큼성큼 다가왔으나 / 밤하늘에 찍힌 건, 노루 발자국이다

 

「노루 발자국」(11쪽)의 전문이다. 시집에는 「고라니」와「고라니 뼈」까지 세편의 ‘고라니’ 시가 실렸다. 눈발이 어지간히 흩날리는 산마을. 버스가 고개를 넘지 못하고 산골 마을은 고립되었다. 고라니가 눈 쌓인 자두나무 정류장에 혼자 나타났다가 산마루로 향했나보다. 마음이 따뜻한 시인은 고라니가 콩 순지르기를 해주었다고 스스로 마음을 도닥였다. 우리집은 주문도 봉구산 자락에 자리 잡았다. 밤중에 새끼 진돗개의 짓는 소리가 멈출 줄 몰랐다. 먼동이 터오고 텃밭에 나서자 밭이랑에 고라니 발자국이 어지럽다. 매운 맛에 혼났는지 청양고추는 달랑 한 포기만 뜯겼다. 윤기 나는 땅콩 잎은 듬성듬성 고라니 이빨자국이 묻어났다. 한창 여린 순을 내밀던 감나무밑 콩밭은 앙상하게 줄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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