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대빈창 2019. 5. 10. 07:00

 

 

책이름 :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지은이 : 한창훈

펴낸곳 : 한겨레출판

 

책장의 180여 권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둘러보았다. 섬과 바다의 작가. 남성적 문체로 첫 손가락에 꼽는 작가의 소설이 한 권도 보이지 않았다. 이럴 수가. 문학상수상 작품집에 실린 중·단편 서너 편을 읽었을 뿐이다. 당연히 장편소설은 손을 대지도 못했다. 작가의 네 권의 산문집만 어깨를 겨누고 있었다. 『한창훈의 향연』(중앙books, 2009년),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문학동네, 2010년),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문학동네, 2014년),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한겨레출판, 2016년). 이래도 되는 것인가.

책은 2015년 5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에 연재되었던 에세이 「한창훈의 산다이」를 책으로 정리해서 묶었다. 여기서 ‘산다이’는 전라도 섬지방의 방언으로 여흥, 축제의 뜻으로 쓰이는 단어였다. 꼭지는 모두 28개였다. 바다와 섬 그리고 섬사람들과 작가 인생의 편린들을 엿 볼 수 있었다.

작가가 선외기 동성호로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를 만나려는 꿈. 어린 작가에게 물질을 가리켜 주고 노동으로 손가락이 굵어 목장갑이 맞지 않았던 24살 청상과부로 험난한 인생을 사신 최경엽 외할머니. 20킬로그램 한 마리 붕장어 가마솥탕으로 마을 주민 대부분이 이른 저녁을 해결.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몽골여행시 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는데, 한국인과 바람난 아내에 대한 복수로 일을 꾸민 가이드. 작가의 1.4톤짜리 선외기 동성호의 만선(滿船)은 가두리 양식장에서 탈출한 40센티미터에 1.5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참돔 300마리를 사흘 걸려 낚은 거문도 방언으로 찝찝한 ‘마이구리'.

나의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꼭지는 「거북손에게 정말 미안하다」와 「팝송 틀어놓고 꽃상여 나갔다」였다. 나는 작년 초겨울 경기북부 소읍에서 거북손을 맛보았다. 단골 호프집의 주 메뉴는 짝태였다. 출입문에 붙인 총컬러의 특별 메뉴가 눈길을 끌었다. 여수에서 직배송한, 남해에서 경기 내륙까지 냉동포장 택배로 올라 온 거북손이었다. 양은냄비에 끓여진 새끼손가락 두마디만한 거북손은 단지 짭짜름할 뿐이었다.  나는 거북손을 작가의 산문집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을 통해 처음 알았다. 작가의 책을 읽은 방송국 모 PD가 예능 프로그램의 먹을거리에 거북손을 등장시켰다. 뒷사정은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작가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자책감에 거북손에게 사과문을 썼다.

영화 〈순정〉의 시나리오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작가보다 3, 4년 선배인 소녀는 두다리 모두 소아마비에 걸려 잘 걷지 못했다. 남자 친구들은 소아마비 여자 친구를 초·중학교 9년 동안 등에 업고 등하교를 했다. 친구들은 고등학교 진학으로 모두 섬을 떠났고, 소녀는 섬에 혼자 남았다. 친구들은 소녀에게 편지를 썼고,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 방학이 되어서 소녀와 친구들은 만날 수 있었다. 그해 여름 그녀의 싸늘한 시체가 바다에서 발견되었다. 망자의 어린 친구들은 마을회관에 분향소를 차리고 스스로 상주가 되었다. 상엿소리 낼 사람이 없었다. 어린 상주들은 소녀가 좋아하던 팝송이 흘러나오는 커다란 카세트를 광목으로 꽃상여에 매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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