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아주 친밀한 폭력
지은이 : 정희진
펴낸곳 : 교양인
‘여성학은 인문학입니다. 바로 인간의 문제를 다룬 인류의 역사를 함께 하는 학문입니다.’라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책을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05), 『정희진처럼 읽기』(교양인, 2014), 『낯선 시선』(2017, 교양인)에 이어 네 권 째 잡았다. 편집증적 강박증일지 몰랐다. 『혼자서 본 영화』(교양인, 2018)가 책장에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공저를 제외한 이제까지 출간된 저자의 단행본들이다. 나는 ‘한국 페미니즘의 교과서’라 불리는 『페미니즘의 도전』을 잡고 필이 꽂혔다. 책은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또하나의 문화, 2001)의 개정판으로 가부장제 남성 중심 한국 사회의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폭력인 아내 폭력 연구서였다.
“마누라와 북어는 3일에 한 번씩 두드려 패야 한다.”라는 폭력적 언사가 자연스럽게 농담으로 통하는 이 땅이다. 한국 여성 대부분은 일생에 적어도 한두 번 이상은 남편이나 애인에게 폭력 피해를 당했다. 2009 - 2015년 살해당할 위기에 놓여 기사화된 여성은 모두 1051명으로 언론에 보도된 것만 최소 2.4일에 한 명씩 생사기로에 놓였다. 하지만 가정 폭력 범죄자를 구속한 경우는 1%에 불과했다. 한국의 검찰과 사법부는 대부분의 가정 폭력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저자는 《여성의전화》에서 상근자로 일한 경험과 국내외 문헌과 사례연구, 가해 남성과 피해 여성을 심층 면접했다. ‘아내 폭력’을 은폐하고 재생산하는 지독한 가부장제 사회인 한국의 사회적 멘탈리티를 속속들이 해부했다. 운명공동체이며 평화로운 안식처라는 허상의 가족을 산산조각냈다. 여성 혐오와 성차별 의식이 압축적으로 구현된 공간이라는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친밀한 폭력』은 ‘아내 폭력’이 개인의 심성 문제가 아닌 보편적 사회 구조 문제이며, 여성과 남성의 계급 관계보다 더 근본적인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밝혔다.
가라앉은 검은 어둠의 입자가 흔들렸다. 적막한 새벽, 어머니의 신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방문을 조용히 열고 마루를 건너 어머니 방문을 가만히 당겼다. 창문으로 흘러드는 어렴풋한 빛에 어머니의 실루엣이 흔들렸다. 악몽에 시달리며 어머니가 고함을 내질렀다. “내가 또 악을 썼구나. 우리 막내 잠도 못 자게” 어머니가 인기척에 무거운 한숨을 내쉬셨다. 아침 밥상머리, 어머니가 어제 꿈 얘기를 하셨다. 매번 똑 같았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돈 문제로 다투신 것이다. 아버지는 두 배미 논농사의 가난한 농투성이이셨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면소재지에서 정부수매가 있었다. 농사꾼이 유일하게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돈 한 푼 건네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살림 밑천을 영세수공업 공장노동자로, 가내 수공 일당으로, 건설현장 막노동으로, 심지어 나물을 말려 정월대보름 오일장에 내다 팔아 가정 경제를 꾸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언 10년이 넘었다. 어머니는 잠들적마다 가난한 집안 살림을 꾸리는 트라우마에 시달리시는지 같은 꿈을 꾸셨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가정 폭력은 차마 글로 남길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인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아니었으면 아버지의 주먹을 어떻게 참을 수 있었겠니” 그렇다. 이 땅의 ‘황혼 이혼’의 내막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책을 읽어 나가다 곱씹었던 인상적인 글귀다. “한국이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하면서도 ‘압축적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국가가 사회 복지비용을 최소화하고 그 짐을 가족 내 여성 노동으로 떠넘겼기 때문이다. 한국 가족 정책의 특징은 ‘가족을 통한’ 복지 제도이고,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는 여성 노동에 의한 복지 제도이다.”(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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