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문주반생기
지은이 : 양주동
펴낸곳 : 최측의농간
작고한 무명 시인의 시전집 뒷날개의 ‘근간’을 보고 알았다. 문인들의 술에 얽힌 3대 기행집인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가 재출간전문출판사 《최측의농간》에서 곧 나온다는 것을. 범우사 刊의 문고판 시리즈인 「논개」의 시인 변영로의 『명정 40년』(1977)과 강홍규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나들목, 2003)은 진즉에 잡았다. 하지만 학수고대하던 책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성질 급한 나는 문고판『문주반생기』(범우사, 1978)를 손에 넣었으나, 막상 펼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을 예약판매로 손에 넣었다. 책을 펼치기까지 1년6개월이 걸렸다. 책 욕심은 둘째 가라면 서러웠으나, 막상 책은 책장 한구석에서 하세월하기 일쑤였다.
문인·지식인의 술자리 에피소드를 담은 일화집으로 여겼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이제 두 권의 책을 펼치고 차례를 비교하니 알겠다. 《범우사》의 문고판은 발췌본이었다. 전체 원고의 일부 내용만 불완전하게 실려 8꼭지로 150여 쪽에 불과했다.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최측의농간, 2017)는 독자의 이해를 위해 초판에 없던 각주 1,996개를 실었고, 6부로 구성된 전문은 무려 600여 쪽에 달했다. 책은 한 문인의 술에 얽힌 분탕질 치던 회고록이 아닌, 고난과 역경의 시대(일제)를 헤쳐나간 한 지식인의 고독한 발걸음의 기록이었다.
국문학을 전공한 나에게 무애(无涯) 양주동(梁柱東, 1903 - 1977)은 향가를 최초로 해독한 국문학자였다. 1929년 경성제대 교수 오구라 신페이는 『향가 및 이두의 연구』를 발표했다. 이는 우리나라 향가에 대한 최초의 연구였다. 무애는 이에 자극을 받아,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조선고가연구』(1942)를 출간하여 『삼국유사』와 『균여전』의 향가 25수를 해독했다. 광복 후 연구를 계속하여 고려가요에 대한 주석을 집대성한 『여요전주』(1947)를 내놓았다.
스스로 국보1호라 칭했던 기인. 무애 양주동을 둘러싼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학창시절 간혹 들었는 지 모르겠다. 5살 때 사서삼경을 줄줄 외웠고, 10대에 사랑방에 작은 서당을 꾸려 훈장을 할 정도로 한학에 능통했다. 약관의 나이에 유수의 동양고전을 머릿속에 넣고 다녔던 천재였다. 20대 시절(1920 - 30)은 이미 시인, 번역가, 문학평론가로 평양 숭전의 교수였다. 무애(无涯)가 최남선, 이광수, 염상섭, 이은상, 현진건, 강경애, 이장희, 나도향, 김동인, 최서해 등 지금은 한국문학사에서 한 좌표를 차지한 문인들과 나눈 풍류와 낭만적 객기가 책 구석구석에 포진해 독자의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은 예상치 못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 준 각주에 실린 작자 미상의 선시(禪詩) 「봄을 찾다(尋春)」(319쪽, 각주 306)의 전문이다.
진일심춘부견춘(盡日尋春不見春) -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녀도 봄은 보지 못하고
망혜답편롱두운(芒鞋踏遍壟頭雲) -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의 구름 따라 다녔데
귀래소연매화후(歸來笑撚梅花嗅) - 허탕치고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 봄은 이미 매화나무 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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