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시는 어떻게 오는가
지은이 : 김언외 21인
펴낸곳 : 시인동네
계곡을 돌아나온 바람 끝에 폭포 소리가 묻어 있다 / 예민해진 귀는 푸른 물빛을 느낀다 // 느지막한 휴일 오후에 걸려온 전화의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 언제부터 외로웠느냐고 묻자 이번 생부턴 아니었을 거라며 / 수화기를 일세기에 걸쳐 내려놓는다 // (······) // 폭포 아래 용소에 石魚가 산다는 소문은 내게 간신히 전해졌다 / 실은 물속에 시퍼런 돌덩이가 잠겨 있을 뿐이지만 /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石魚는 상류로 상류로 헤험치고 있었다 / 수 세기를 거슬러 기원전으로 / 다시 제 나이만큼의 세월 건너 저 자리로 돌아와 외로운 회향을 거듭하는 / 石魚 / 온통 푸른 눈물에 잠겨 있는 / 石魚
윤의섭의 「石魚」(246 - 247쪽)의 1․2․6연이다. 시인은 예전 주왕산에 다녀 온 일을 떠올렸다. 용추 폭포가 떨어지는 용소 한가운데 물고기 모양의 유선형 바위가 잠겨있었다.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보며 ‘石魚’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시를 쓰기 며칠 전 추석전후 고향집에서 목도한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 친구 분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어머니는 통화했다. 어머니 친구 분은 명절인데 사람이 없어 힘들다는 하소연을 했고, 어머니는 위로의 말씀을 건넸다. 간단한 통화였지만 시인에게 오랜 여운을 남겼다. 그때 시인은 이질적 소재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시의 구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石魚」의 탄생 과정이었다.
여기서 주왕산 용추 폭포의 물에 잠긴 돌덩이를 본 순간이 ‘시적 순간’이었던 것이다. 책은 각자 개성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한 시인 22인의 생생한 시적 경험을 담았다.
김언 / 함기석 / 이영광 / 위선환 / 이홍섭 / 박형준 / 이민하 / 김언희 / 이재훈 / 고진하 / 오은 / 박용하 / 송재학 / 신용목 / 문혜진 / 이윤학 / 김신용 / 손택수 / 이규리 / 윤의섭 / 김안 / 길상호
2014년 『시인동네』 겨울호부터 연재되고 있는 「시적 순간」이 『시는 어떻게 오는가』라는 표제를 달고 나왔다. 각 꼭지는 시인들의 ‘시론(詩論)’이라고 불릴 수 있는 스물두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더불어 여덟 편의 시가 실렸다. 귀에 익은 시인들이지만 내가 그동안 잡은 시인들의 책은 시집 여섯 권과 한 권의 산문집뿐이었다. 두 권의 시집을 가트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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