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너는 잘못 날아왔다

대빈창 2019. 7. 22. 07:00

 

 

책이름 : 너는 잘못 날아왔다

지은이 : 김성규

펴낸곳 : 창비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간난아이, /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 동굴에서 세 구(具)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

입에서 기어다니는 구더기처럼 / 신문 하단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가 /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 새벽 / 지금도 발굴을 기다리는 유적들 / 독산동 반지하동굴에는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2004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22 ~ 23쪽)의 1․3연이다. 15여 년전 그 시절, 나는 새해 벽두 중앙지의 신춘문예 시 당선작들을 온라인을 통해 일별하는 가벼운 재미에 빠져 있었다. 죽은 여인의 젖꼭지를 문 죽은 아이, 그리고 온몸이 흉터인 죽은 사내. 가난한 자는 죽을 자유 밖에 없던 천민자본주의 이 땅에서 독산동 반지하방 가족의 죽음을 다룬 시였다. 시 속의 풍경이 섬뜩했다. 처음 만난 시인은 이렇게 강렬했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향수(鄕愁)」의 시인 정지용(鄭芝溶.1902-?)을 낳은 충북 옥천이 시인의 고향이었다.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가 백가흠의 「백(白)형제의 문인보」에 의하면 시인은 학생 시절, 150번 종점 근처 반지하 빌라에서 누나와 함께 살았다. 그때 반지하방 체험이 등단작에 투영되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1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표제에 눈길이 끌려 두 번째 시집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창비, 2013)를 손에 넣었다. 생의 비참함을 꿰뚫어보는 시선에 매료되었을까. 세 번째 시집을 기다렸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할 수 없이 첫 시집을 펼쳤다. 4부에 나뉘어 53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故 황현산(1945 ~ 2018) 선생의 「불행의 편에 서서」였다.

문학평론가는 시집을 ‘우리시대의 불행한 현실 보고서’로 “이들 악몽은 현실을 초현실적으로 비틀어놓기 때문에 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초현실적으로 내면화되어 있는 불행을 드러내기에 시가 된다.”고 평했다. 시인은 현재 출판사 《걷는사람》의 대표로서 시인선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었다. 나는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을 기다리다 지쳐, 고향을 지키며 농사짓는 또다른 옥천 출신의 시인을 찾았다. 〈걷는사람 시인선 3〉로 출간된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는 송진권 시인의 두번 째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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