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개인주의자 선언

대빈창 2019. 8. 26. 07:00

 

 

책이름 : 개인주의자 선언

지은이 : 문유석

펴낸곳 : 문학동네

 

2015년 9월에 1판 1쇄를 찍었다. 벌써 4년이 흘렀다. 오래 묵은 책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독자들은 꾸준히 책을 찾았다. 전국 공공도서관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빌린 책 1위였다. 저자 문유석은 지방법원 부장판사였다. 학력고사 시절 전국 수석을 차지한 인재였다. 그는 겸손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 총통 각하 덕에, 과외와 사교육 없이 변별력 있는 전국 단위 시험 한 방으로 승부 내는 그분 스타일의 단순 무식 명쾌한 입시제도의 혜택을 듬뿍 받은 세대의 한 사람”(74 ~ 75쪽)이라고. 그렇다. 불법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군홧발 정권의 유일한 치적일지 몰랐다. 평준화, 과외금지, 대학입학 정원 확대로 눈망울 또렷한 가난한 자식들이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민중의 자식들은 강남의 8학군과 같은 일렬선상에서 스타트할 수 있는 기회의 균등을 부여받았다. 시대의 불한당들은 정권을 연장하려 ‘4·13 호헌조치’를 도발했다. 과외 없이 대학에 들어 간 가난한 자식들은 의식화되었고, 87년 6월 국민대항쟁의 주역이 되었다.

저자의 어린 시절 꿈은 섬에서 좋아하는 책을 잔뜩 쌓아 놓고, 음악을 들으며 홀로 사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저자가 가장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서해의 작은 외딴 섬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정착한지 십여 년이 넘었다. 젊은 시절 한때, 프로그레시브 록과 헤비메탈에 광적으로 빠졌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대중음악을 도외시한 채, 활자중독자로 만족하고 있다. 내 방 책장에 1500여권 책이 쌓여 더 이상 수납공간이 없다. 꼭 필요한 책만 손에 넣고, 한 달 전부터 읽을거리는 군립도서관에서 대여했다. 이 책도 그중 한 권이었다.

‘눈치와 체면과 모양새와 뒷담화와 공격적 열등감과 멸사봉공과 윗분 모시기와 위계질서와 관행과 관료주의와 패거리 정서와 조폭적 의리와 장유유서와 일사분란함과 지역주의와 상명하복과 강요된 겸손 제스처와 모난돌 정맞기와 다구리와 폭탄주와 용비어천가와 촌스러움’(9쪽)의 대한민국에서 감히 저자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를 꿈꾸었다. 조직과 서열이 중요한 한국에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오해받기 알맞다. 개인주의자를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 아니면 ‘자기중심주의자’라고 오해하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사회문화를 신랄하게 또는 유머러스하게 비판했다. 합리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했다. 자신의 자유가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화 과정을 통해 개인주의자가 되는 프랑스 사회 65%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소득 일부로 가난한 이웃의 의료비·교육비·주택비 등을 부담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똘레랑스 정신을 갖추었다. 세계에서 잘사는 나라로 꼽히는 두 부류에서 북유럽 국가의 사람들은 행복도가 높은데 비해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 사람들은 행복도가 낮다. 이는 개인주의적 문화와 집단주의적 문화의 차이에서 발생했다. 학벌, 직장, 직위, 차종······. 등 삶의 모든 국면에서 수직적 서열화가 작동되는 무한경쟁 사회의 구성원들은 탈락의 공포에 시달렸다.

독재정권이 주입한 국가주의가 발현되는 대표적 현상은 ‘스포츠 애국주의’일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몰려든 수십만 인파는 하나같이 붉은 악마 T셔츠를 입었다. 지상파 방송은 장장 100분 동안 뉴스특보를 내보냈다. 모든 연예인들은 16강이나 8강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인기에 영합하는 그네들의 생리로 어쩔수 없었을 것이다. 태극기가 치마로 둔갑하고 태극문양이 연지처럼 양볼에 붙었다. 생맥주·치킨 집은 밤샘 영업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그 시절 에피소드 하나. 나는 동료들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독일과의 4강전을 관람했다.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리를 찾으니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수만 명의 인파가 하나같이 붉은 T셔츠를 입어 누가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아마! 휴대폰이 없었다면 나는 혼자 귀가길에 올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