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안녕 주정뱅이

대빈창 2019. 8. 29. 07:00

 

 

책이름 : 안녕 주정뱅이

지은이 : 권여선

펴낸곳 : 창비

 

「봄밤」은 치명적인 류머티즘 관절염의 수환과 중증 알코올중독자 영경은 요양원에서 동거하는 부부다. 영경이 알코올성 치매 금치산자 환자가 되어 요양원에 돌아왔을 때 수환은 이미 장례까지 치렀다. 「삼인행」은 이혼여행을 떠나는 규와 주란 부부와 친구 훈의 동행기이다. 부부의 불화 원인이 규의 술로 인한 의처증으로 짐작된다. 집으로 돌아오며 들른 폭설속 황태집의 소주를 들이키는 규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우리 다시는 서울로 못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지 않냐?”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체념이 묻어났다.

「이모」는 평생 결혼도 못하고 가족 뒤치다꺼리에 생을 보낸 이모는 쉰다섯에 홀연 사라져 2년간 잠적했다. 췌장암으로 병원에 입원한 이모와 병문안 온 조카며느리는 처음 만났다. 석 달 뒤 이모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정기적으로 둘의 만남은 지속된다. 이모의 술에 얽힌 과거가 독백으로 이어졌다. 「카메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팀원 모임에서 문정과 관희는 오랜만에 만나 둘 만의 술자리로 이어졌다. 관희의 동생 관주와 문정의 연애는 두 달 만에 파경을 맞았다. 문정은 연애 초기 사진을 찍고 싶어 했고, 관주는 헤어진 후에도 그것을 못 잊고 캐논 60D 카메라를 샀다. 시험 촬영하다 불법체류자의 오해로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다.

「역광」은 작년에 등단한 신인 여류 소설가가 숲속 예술인 레지던스에 묵는다. 신인 소설가는 식사나 산책을 마치면 방에 돌아와 커피잔에 소주를 부어 마셨다. 그녀가 바랐던 약시로 눈이 점점 멀어져가는 번역가·소설가인 위현과 단 둘이 술을 마시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런데 소설 말미에 이르러 이 모든 것이 그녀의 환상이었다. 여기서 위현(爲現)은 ‘모든 것이 거짓으로 나타났을 뿐’이라는 뜻으로 그녀 자신의 판타지가 투영된 것이다.

「실내화 한 켤레」는 시나리오 작가 경안이 고교 2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혜련과 선미를 14년 만에 만났다. 셋의 술자리는 경안의 원룸에서 시작되어 나이트클럽, 아는 언니 카페, 다시 원룸으로 이어졌다. 지독한 성병을 가진 남자와 관계를 가진 혜련은 다음날 선미의 입을 통해 불행을 알았다. 배경은 선미의 위악적인 질투였다. 고교 때부터 비밀스런 면이 많았던 선미의 집을 나오면서 경안은 생각했다. ‘선미를 휘감고 있는 묘한 분위기는 비밀스러운 안개라기보다 치명적인 독가스에 가깝다’고.

「층」은 스물아홉 헬스트레이너 인태와 4년 연상 박사과정 예연의 연애 이야기였다. 둘의 헤어짐은 예연이 우연히 엿들은 천박한 욕설의 인태 통화에서 비롯되었다. 일식집의 초밥과 일본술 사케. 꼼장어와 폭탄주, 호프집의 생맥주 등. 다종다양한 술과 안주가 등장했다. 삶에서 돌출되는 우연한 희극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이었다. 다시 만나기를 애원하는 인태의 전화를 받은 예연은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순전히 표제에 이끌려 도서관에서 책을 집어들었다. 『안녕 주정뱅이』에 실린 7편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주정뱅이들의 생은 불우하고 또 불우했다. 작품마다 갖가지 음주 장면과 안주가 등장했다. ‘주류(酒類) 문학의 위엄’이라는 평가를 받은 소설집은 지나간 삶의 불가해한 장면을 서늘한 문장으로 그려냈다. 작가 권여선은 고통을 견뎌내는 인간의 삶에 대한 예리하고 날카로운 통찰과 서늘한 진실을 담아내는데 탁월했다. ‘술에 관한 한 인생과 작품이 일치’하는 작가 권여선은 말했다.

“‘혼술’을 주로 하면서 소설 속 인물만 생각한다. 맨정신으로는 들기 어려운 생각이 올 때가 있다. 인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괴로움을 덜어주기도 한다. 글과 거리를 둘 수 있으니 퇴고할 때도 좋다. 술 세게 먹고 글을 보면 전생에 쓴 것 같아. 나를 파괴할 정도로 술 먹던 때에선 벗어났다. 술과 공존, 동행하고 있다는 게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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