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
지은이 : 최준식
펴낸곳 : 김영사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두 개의 우편물이 날아왔다. 개봉하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이었다. 두 개의 우편물 내용은 같았다.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모두 어머니 등록증이었다. 전화를 넣었다. 나의 등록증은 두 달 뒤에 다시 발송한다고 했다. 어머니 등록증 하나를 폐기했다. 넉 달 전 어버이날 어름이었을 것이다. 이년 만에 어머니와 강화도에 외출했다. 봄이 무르익었는데 어머니는 기운이 없으셨다. 혈압을 진찰하는 단골 의원에 들러 어머니는 링거주사를 맞으셨다. 국민건강의료보험 강화출장소에 둘러 모자(母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등록증을 감싼 종이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 톨스토이는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 그렇다. 어머니와 나는 죽음을 준비하는 한 가지 선행(先行)을 했다.
저자 최준식은 40여년을 한국의 문화, 종교 그리고 죽음을 연구했다. 책은 말기 질환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사별까지의 긴 과정에서 본인, 가족, 의료진 등 구성원들의 임종에 대처하는 자세와 해야 할 일을 담은 실용 가이드북이었다. 한국인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외면, 부정, 혐오다. 이 땅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 죽음을 목도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더 살고 싶은 본능을 작동시켰다. ‘유교현세주의’가 한국인의 가슴 속에 뿌리깊이 박혔다. 사후세계를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이렇게 힐난했다. “삶도 모르면서 어찌 사후의 일을 논하는가.”
저자는 말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죽음 자체를 준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 문제로 돌아옵니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책은 무엇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유언장〉을 미리 써놓을 것을 강조했다. 유언장은 민법 제1066조에 따라 이름, 주소, 날짜, 내용 전문, 날인이 들어가야 효력을 발휘했다. 날인은 자신의 어떤 도장도 괜찮고, 엄지손가락 지장을 찍어도 되었다. 부록은 친절하게 ‘유언장 서식’이었다. 그렇다. 나도 〈유언장〉을 작성해야겠다. 임종은 병원이 아닌 집에서 맞았으면 좋겠다. 〈장기기증희망등록증〉이 지갑 한 구석에 담겼다. 가장 친한 몇 분만 나의 수목장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다. 지낼 사람이 없으니 마땅히 제사는 없다. 나의 많지 않은 재산은 병든 세상을 치료하는 자금으로 환원시킬 것이다. 남기고 싶은 말은 “내가 남긴 허물을 부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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