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

대빈창 2019. 9. 23. 05:16

 

 

책이름 :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

지은이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옮긴이 : 남진희

펴낸곳 : 민음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ges, 1899 - 1986)의 독창적인 소설은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불렸다. 독특하고 기괴한 상상이나 현상을 마치 실재했던 사실처럼 그려냈다. 대립되는 개념인 상상과 사실을 한데 모아 독자들은 착각과 혼돈 속에서 삶의 현상과 본질을 탐구해야 했다. 내가 보르헤스를 처음 접한 것이 20여 년 전이었다. 어떤 소설집의 말미에 붙은 해설을 읽다가 미학자 진중권의 새로운 소설독법에 놀라는 평론가의 글을 접했다. 화가·시인 박상순의 표지그림이 인상적인 민음사에서 출간된 보르헤스의 전집을 손에 넣었다. 『불한당들의 세계사』, 『픽션들』, 『알렙』, 『칼잡이들의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기억』 초판이 1994년부터 1996에 나온 다섯 권은 단편소설 모음집이었다. 그는 장편하나 없이, 평생 단편에만 몰두했다.

보르헤스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방대한 독서량으로 하나의 도서관에 필적할 만한 지식으로 ‘20세기의 도서관’으로 불렸다. 우주에 비견할 만한 분방한 상상력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을 지내 ‘우리 시대의 사서’로 일컬어졌다. 책은 작가가 엄선한 신화와 문학, 전승과 문헌 속 상상의 동물들이 담긴 색다른 박물지였다. 전체는 117편의 꼭지로 이루어졌다. 「중국의 동물들」(132 ~ 134쪽)의 출전은 『태평광기(太平廣記)』로, 중국 송(宋)의 이방 등이 편찬한 소설집으로 인용된 책만 500여 권에 달했다. 나는 중국의 오래된 지리·의학·역술·신화의 보고인 『산해경(山海經)』속의 신비한 동물들을 떠올렸다. 녹촉(鹿蜀)은 호랑이 무늬를 한 말(馬)로 머리는 희고 꼬리는 붉다. 꿩처럼 생긴 새가 하늘을 나는데 턱 밑의 수염으로 날았다. 물속의 소처럼 생긴 물고기(鯥魚)는 뱀 꼬리에 날개를 가졌고, 가슴지느러미를 달았고, 선구(旋龜)는 새의 머리에 살무사 꼬리를 달고 헤엄쳤다.

「로크」(55 ~ 57쪽)는 『아라비안나이트』로 서구에 알려졌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발톱으로 코끼리를 낚아 하늘로 들어 올려 떨어뜨려 잡아먹었다. 날개 길이는 열여섯 걸음이나 되었고, 깃털 하나가 여덟 걸음이었다. 「가미(神)」(170 ~ 171쪽)의 지진어(地震漁)는 숭어의 일종으로 크기가 삼천리로 일본 열도를 등에 지고 다녔다. 물고기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헤엄치는데 머리는 교토 지방 아래에 있고, 꼬리는 아오모리 아래에 있다고 한다. 나는 로크와 지진어를 보며 장자의 엄청난 과장과 허풍을 떠올렸다. 내편(內篇) 제1장 소요유(逍遙遊)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북녘바다에 사는 곤이라는 물고기는 그 크기가 몇 천리인지 알 수 없고, 이 물고기가 변해 붕이라는 새가 되는데 그 크기를 역시 알 수 없다. 이 새는 바다의 기운이 일면 남녘바다로 날아가는데 파도가 삼천리요, 하늘에 비상하면 구만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