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황색예수

대빈창 2019. 9. 18. 04:40

 

 

책이름 : 황색예수

지은이 : 김정환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책의 소유를 표식하는 도장인 장서표(藏書票) 모음집인 판화가 남궁산의 『인연을, 새기다』(오픈하우스, 2007)를 펼쳤다. 시인 김정환의 장서표는 펼쳐진 책 상단에 국제공용 표식 라틴어 EX-LIBRIS가, 하단에 섬뜩하게 날 선 칼이 새겨졌다. 꼭지 제목은 「모순을 베는 예리한 칼」로 장서표의 소재를 『황색예수』에 실린 「갈 길」에서 따왔다.

 

이대로 만남을 시시하게 청산할 수는 없어. / 몇천 년을 가슴속에서 징징 울던 칼이 / 이제 외치고 있어. 사랑과 칼과 만남의 흔적에 대해서 / 그 피비린 관계에 대해서.

 

판화가에게 시인은 시대를 감지하고 모순을 베는 예리한 칼을 가진 사람이었다. 시인은 80년대 노동자문화운동연합 의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로 독재정권에 맞서 최전선에서 투쟁했다. 시인은 1980년 『창작과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전방위적으로 집필 활동을 펼쳐왔다. 그가 39년간 저술한 책은 시, 소설, 희곡, 평론, 인문학 번역서, 음악평론 등 200여권에 달했다. 시집을 손에 넣고 책장을 둘러보다 나는 부끄러웠다. 시인이 번역한 부피 큰 양장본의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비밀』(김영사, 2000)과 시집 『내 몸에 가라앉은 지명(地名)』(문학동네, 2016) 뿐이었다.

80년대 학창시절, 끝내 손에 넣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눈길만 주었던 절판된 시집이 이만큼 세월이 흘러 재출간되었다. 아무튼 기분좋은 일이었다. 35년 만에 재출간된 시집은 무려 447쪽 분량의 대단(?)한 부피를 자랑했다. 해설도 없이 초판본 3권 시집을 온전히 실었다. 『황색예수 - 탄생과 죽음』(1983), 『황색예수 2 - 공동체, 그리고 노래』(1983), 『황색예수 3 - 예언,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하여』(1986)는 모두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집은 성경을 모티브로 삼아 1980년대 이 땅에서 횡행하던 파시즘의 억압과 착취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 여정을 담았다. 1권은 주로 마태복음을, 2권은 사도행전을 각 시편마다 인용한 뒤, 참혹한 민중의 현실과 극복 전망을 노래했다. 3권은 서두에 요한묵시록 세 구절을 인용하고, 열 네 편의 장시(長詩)를 유장한 호흡으로 읊었다.

소설가 이인성은 “1980년대 한국 민중문학의 가장 독창적이고 독보적이 미학 체계”라고 시집을 평했다. 문단에 막 들어 선 젊은 시절의 시인. 정의롭고 진실한 정치적 가치, 반독재 민주화, 민중의 자유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분단 현실은 여전했고, 민중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다. 시인의 고민은 35여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대로였다. 1983년 정초에 쓰여진 『황색예수』의 ‘시인의 말’(15 - 16쪽)의 일부분이다. “우상화된 예수, 우상화된 개인적 고통에 대한 고발이며, 잘못된 성(聖) - 속(俗)의 이분법적 개념 규정에 대한 수정 작업이며, 현세기복적 재벌 종교의 반민중성, 미래 지향적 구원 종교의 관제적 반역사성에 대한 규탄이다. 그리고 가난한 민중들의 공동체 속에서, 쫓겨난 오늘의 예수를 확인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미래의 어렴풋한 모형을 찾으려는 '의미 찾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