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지은이 : 박준
펴낸곳 : 난다
시인은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와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2017)으로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올라섰다. 시집은 11만부, 산문집은 16만부가 팔렸다. 책 안 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 땅에서 대단한 승전보(?)였다. 6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를 예약판매로 급하게 손에 넣었으나 여적 책장에 잠들어있다. 시인이 낸 3권의 책은 모두 표제가 길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상징은 표지그림이다. 최아름의 시인의 컷은 누가 뭐래도 귀공자 상이었다. 너무 곱상하여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자란 귀한 집 자제 같았다. 나는 시인의 산문집을 잡고 첫 시집의 가난·상실·이별·죽음 등의 정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아니 시문집(詩文集)으로 불러야 마땅했다. 4부에 나뉘어 실린 글과 「들어가며」와 「나오며」까지 모두 63편의 글이 실렸다. 인천 / 경주 / 여수 / 협재 / 벽제 / 화암 / 묵호 / 해남 / 혜화동 / 행신 / 삼척 / 연화리 까지 지명을 제목으로 삼은 꼭지는 대부분 (접두사) ‘그해’가 붙었다. 산문과 시가 함께 엮인 글들은 아무 꼭지나 먼저 열어도 상관없었다.
표지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이스라엘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화가 기드온 루빈(Gideon Rubin)의 「Untitled」(2015년 作)이라는 작품이었다. 강 위의 배에 여자는 노를 젓고, 남자는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목구비가 모두 지워져 텅 빈 얼굴로 표정을 알 수 없다. 가난한 남매이거나, 죽음을 앞둔 젊은 부부인지 모르겠다. 표제는 「고아」(150 - 157쪽)의 마지막 문장에서 따왔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표지그림의 남녀는 같은 고아원 출신의 남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들이 / 나에게는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 당신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 그러면 우리가 / 함께하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은 / 당신에게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 나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여행과 생활」(53쪽)의 전문이다. 시인이 몇 해 전 만난 좋아하는 선배 시인은 ‘고독과 외로움’을 이렇게 구분했다.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51쪽) 그녀와 헤어진 것인가.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6개월이 문득 지나갔다. 홀로 여행을 떠나야겠다. 20대 초반, 질풍노도의 시기. 알지 못할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가슴에 품고 무턱대고 떠났던 그곳 탄광촌. 강원 도계역의 허름한 중국집과 여인숙은 그대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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