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서준식의 생각
지은이 : 서준식
펴낸곳 : 야간비행
월간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 김규항은 오래전 첫 산문집 『B급 좌파』를 찾다 알게 되었다. 책은 품절되었고, 그 아쉬움을 『나는 왜 불온한가』, 『B급 좌파 세 번째 이야기』, 『예수전』으로 대신했다. 생텍쥐페리가 떠오르는 출판사 《야간비행》은 이미 오래 전 문을 닫았다. 그렇게 출판사는 나의 뇌리 한 구석에 머물다 스러졌다. 얼마 전, 세상에 나온 지 15여년이 지난 책술이 누렇게 바랜 책 한권을 손에 넣었다. 품절된 책이 다행히 온라인 중고서적에 단 한 권 남았었다. 운이 좋았다. 내가 잡은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은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세 번째 복간 된 책이었다. 두 번째 복간은 출판사 《야간비행》에서 이루어졌다.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이 70-80년대 파시즘의 폭압으로부터 신념을 지킨 한 양심수의 억울한 감옥살이의 기록이라면, 『서준식의 생각』은 비전향 장기수 1호로 세상에 나온 사회주의자의 15년간의 인권운동 기록이었다.
책은 보안관찰법, 장기수 문제,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국가보안법 제7조, 고문기술자 이근안, 한총련 탈퇴에 대한 입장, 100인위원회 여성운동, 양심적 병역거부 여호와의 증인 등 88년부터 2003년까지 행동으로 보여 준 인권운동가 서준식의 녹록치 않은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실천적 인권운동가는 「머리말」에서 말했다. “진보적 글쟁이들의 글이란 ‘금 안에서만 노는 ’ 글이다.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망각하는 모든 글쓰기는 미망에 지나지 않는다.” 책을 읽어가면서 ‘행동하지 않는 자의 부끄러움, 고난받지 않는 자의 죄책감, 악한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자의 슬픔’(13쪽)을 나는 느끼고 있는가?
서. 준. 식. 이름 석자를 처음 안 것은 91년 5월 정국이었다. 그 시절 나는 안산 화공약품 공장노동자였다. 하루 노동이 끝나면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의문사 시신을 지키기 위해 안양병원으로 향했다. 명지대 새내기 강경대가 시위 도중 백골단에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으로 이어지는 분신 정국은 ‘강서훈 유서대필사건’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노태우 정권의 실정에 항의하는 분신이 잇따르는 가운데 1991년 5월 8일 당시 김기설 전민련 사회부장의 분신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검찰은 김기설의 친구였던 단국대학교 재학생 강기훈이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기소한 인권침해 사건이었다. 전민련 인권위원장 서준식은 사건 당사자 김기설과 인권활동을 함께 하여 누구보다 그의 필체를 잘 알고 있었다. 강기훈은 1994년 8월 17일 만기 출소했다. 2015년 대법원은 강기훈의 무죄를 선고했다. 그때 국과수 문서분석실장 김형영은 오랫동안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을 일삼았다.
1997년 제2회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레드헌터」를 검찰은 이적표현물로 규정했다.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서준식을 국가보안법 위반을 비롯한 다섯 가지 죄명으로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했다. 「레드헌터」는 앞서 부산영화제에서 심의를 거쳐 상영된 영화였다. 책의 마무리는 노란 색지로 꾸며졌다. 인권운동가가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되어 사랑하는 두 딸에게 보낸 8통의 편지였다. 추운 겨울감방에서 사랑하는 어린 두 딸에게 보낸 편지속 이야기는 인권운동가의 가족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잔잔한 감동을 일깨웠다. '93년 나의 발걸음은 매주 영등포구치소로 향했다. 후배가 ‘사노맹 사건’에 연루되어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김포에서 안양행 시외버스를 타고 개봉역에서 내려 구치소 후문으로 들어가 접견을 기다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일정한 수입이 없었던 노가다 잡부로 두 후배의 영치금과 도서구입비로 나는 얼마나 조바심을 태웠던가. 순정했던 시절이었다. 한 달에 한번씩 《인권운동사랑방》소식지 『사람 사랑』이 우편으로 날라온 세월이 꽤 묵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도 《인권운동사랑방》의 정기후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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