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보르헤스의 꿈 이야기

대빈창 2019. 10. 21. 07:00

 

 

책이름 : 보르헤스의 꿈 이야기

지은이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옮긴이 : 남진희

펴낸곳 : 민음사

 

나는 꿈 이야기라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 인생무상 (人生無常)을 비유한 그 유명한 장자(莊子)의 호접몽(蝴蝶夢)이 먼저 떠올랐다. 어느 날 장자는 제자를 불러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내가 어젯밤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내가 나인지도 잊어버렸다.

그러다 불현듯 꿈에서 깨었다. 깨어보니 나는 나비가 아니라 내가 아닌가?

그래 생각하기를 아까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 때는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보니 분명 나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지금의 나는 과연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ges/아르헨티나, 1899 - 1986)의 『상상동물 이야기』를 앞서 소개했다. 이번에는 꿈 이야기다. 그가 동서고금의 전승과 다양한 문헌에 기록된 꿈 이야기를 직접 골랐다. 수메르 신화, 창세기, 북유럽 신화, 아르메니아 역사, 중국의 기서, 프랑스 왕정 이야기와 보르헤스가 쓴 단상까지 모두 113꼭지였다. 니체의 단 1줄짜리 「준비하면서」(153쪽)에서 프란시스코 케베도의 24쪽을 차지하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꿈 혹은 해골에 대한 꿈」(169 - 190쪽)까지 다양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조지프 에디슨의 꿈에 대한 잠언을 소개했다. “잠이 든 인간의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 극장이자 배우이며 동시에 관객으로서 자유를 누린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잠을 자는 동안 인간은 우화 작가의 역할을 한다.”(11쪽)고.

어쩌면 출판사의 과장 광고(?)에 쓴웃음을 입가에 지은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뉴욕타임스에서 선정한 올해의 일러스트 북에 일곱 번이나 선정된 삽화가 피터 시스가 보르헤스의 상상 속 세계를 독창적이고 생생한 그림으로 구현했다고 속표지에 자랑했다. 그런데 그림은 겉표지에 달랑 3점 뿐이었다. 본문은 단 한 점의 삽화도 없었다. 삽화를 그린 이의 소개는 삭제해야 마땅했다. 마지막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유명한 매몽(賣夢) 설화다.

 

신라 김유신(金庾信)의 누이 문희(文姬)가 언니 보희(寶姬)의 꿈을 사서 김춘추(金春秋, 태종무열왕)의 비(妃)가 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해졌다. 보희가 꿈에 서악(西岳)에 올라가 오줌을 누자 서라벌에 가득 찼다. 이튿날 보희가 꿈 이야기를 하자, 문희는 꿈을 사고 싶어했다. 문희는 언니에게 비단 치마 한 벌을 주고 옷자락을 벌려 꿈을 사들였다. 그 뒤 김유신은 김춘추와 같이 정월 오기일(午忌日)에 자기 집 앞에서 축구(蹴鞠)를 하다가 일부러 김춘추의 옷을 밟아 옷끈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제 집에 들어가 옷끈을 달게 권했다. 김유신이 맏누이 보희에게 꿰매게 했다. 보희는 거절했고, 문희는 그 뜻을 알아챘다. 이를 인연으로 김춘추가 자주 내왕하여 문희가 임신했다. 김유신은 부정한 관계로 임신한 문희를 꾸짖고, 선덕여왕이 행차할 때 마당에 장작더미를 쌓고 불을 질러 태워 죽이려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여왕이 일의 전후를 다그쳤다. 이에 김춘추는 어쩔 수 없이 문희와 혼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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