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지은이 : 송진권
펴낸곳 : 걷는사람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 부추꽃만 하얗게 피었습니다 //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 살았었다고 // 뜨물 빛 부추꽃이 고샅까지 / 마중 나와 피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를 뒤늦게 찾아 간 쓸쓸한 정경을 노래한 시였다. 3부의 첫 시면서 표제를 딴 구절이 들어있는 시「부추꽃」(71쪽)의 전문이다. 아마! 가장 어머니의 손 가까이에 있는 채소가 부추일 것이다. 마땅한 찬거리가 없을 때 어머니는 부추 겉절이를 무쳐 내셨다. 우중명절이라 할 일없어 이웃네가 발걸음을 하시면 급하게 술안주로 부추전을 데쳤다. 부추 빠진 오이소박이에 손이 가지 않았다. 부추는 손이 갈 때마다 뜯어도 잠시 한눈을 팔면 그만큼 또 자랐다. 어머니는 다만 아궁이의 재를 부추 주변에 한 움큼씩 뿌렸을 뿐이다.
빈집을 지키는 고양이 / 물 받아놓은 빨간 고무 다라이 / 살구 담긴 소쿠리 / 느티나무 슈퍼 주인 할머니 / 무논의 개구리 울음 / 온기 남은 아궁이 / 외딴집 뒤안 고욤나무 / 외양간 송아지 / 지붕 위 텔레비전 안테나 / 호두나무 옻 오른 딸내미 / 내남적없이 배곯던 보릿고개 / 저수지 물뱀 / 가죽나무가 지천인 부락 / 울타리 아래 뱀딸기 / 천수답 한귀퉁이 둠벙 / 나룻배 사공
2004년 창비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고향을 지키며, 첫 시집 『자라는 돌』(창비, 2011년)과 동시집 『새 그리는 방법』(문학동네, 2014년)을 상재했다. 전통적 가치와 지혜가 살아있는 마을공동체의 일상이 정겨운 토속어와 어우러져 감칠맛 나는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6 시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안서현의 「들고 남에 관하여」다. 시집은 2019년 제21회 천상병詩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회는 시집을 이렇게 평가했다. “송진권 시인의 시는 요설과 장광설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이 시절에, 자신의 터(place)를 지키며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받아 적는 시인의 자리에 대해 다시 한번 강력히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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