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다산시선
지은이 : 정약용
엮은이 : 송재소
펴낸곳 : 창비
갈밭마을 젊은 여인 울음도 서러워라 / 현문縣門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 군인 남편 못 돌아옴은 있을 법도 한 일이나 / 예부터 남절양男絶陽은 들어보지 못했노라 // 시아버지 죽어서 이미 상복 입었고 /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 삼대三代의 이름이 군적에 실리다니 // 달려가서 호소하나 동헌 문엔 호랑이요 / 이정里正이 호통하여 단벌 소만 끌려갔네 // 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 피가 가득 / 스스로 한탄하네, 아이 낳아 다친 곤액 // 잠실음형蠶室陰刑 그 어찌 죄가 있어서리오 / 민閩 땅 자식 거세함도 가엾은 일이거늘 // 자식 낳고 사는 건 하늘이 정한 이치 / 건도乾道는 아들 되고 곤도坤道는 딸 되는 법 // 말 돼지 거세함도 가엾다 이르는데 / 하물며 대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 부자들은 한평생 풍악이나 즐기면서 / 한알 쌀, 한치 베도 바치는 일 없으니 //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한고 /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鳲鳩篇을 읊노라
다산의 詩하면 떠올려지는 「애절양哀絶陽」(358 - 360쪽)의 전문이다. 『목민심서』에 ‘창작노트’라 할 수 있는 글이 실렸다. 다산의 강진 유배시절 계해년(癸亥年), 삼정三政 문란으로 핍박받는 한 백성이 자신의 생식기를 스스로 베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전해 듣고 시를 지었다. 다산이 살았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은 조선 봉건사회의 내적 모순의 격화로 그 말기적 현상이 도처에 나타났다. 조선의 3대 재정인 전정(田政)·군정(軍政)·환정(還政: 정부 보유 미곡의 대여 제도)의 삼정三政 문란. 이를 둘러싼 관리들의 횡포, 노론 벌열층의 독점적 전제정치, 봉건적 신분제도의 모순과 과거제도의 폐단 등.
나는 그동안 다산 정약용에 대한 4권의 책을 읽었다. 다산문학선집(현대실학사, 1996)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비,2009) / 다산의 마음(돌베개, 2008) - 산문선집 / 다산의 풍경(돌베개, 2008) - 시선집. 창비에서 출간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가 엮고 옮겼다. 양장본 겉표지가 차(茶)색으로 저자의 아호 다산(茶山)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다산시선』을 옮기고 엮은 송재소는 다산연구소 이사였다. 창비에서 출간된 2013년 개정증보판의 양장본 속표지도 역시 차(茶)색이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 여 권의 책을 펴낸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또한 다산은 25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시편을 남긴 시인이었다. 시편은 리얼리즘 정신의 소산이었다. 다산은 시를 이렇게 말했다. “시대를 아파하고 퇴폐한 습속을 통분히 여기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책은 엄선된 179수의 시편을 「수학시절」(1762-89), 「벼슬살이 시절」(1789-1800), 「유배시절」(1801-18), 「유배시절 이후」(1818-36)로 나뉘어 실었다. 『다산시선』은 다산의 시를 시대 순으로 배열하여 마치 한 권의 평전을 읽어나가는 느낌이었다. 역주자의 자상한 ‘각주’가 그 힘이었다. 다산의 우여곡절 많은 생애와 사상을 일기처럼 읽어 나가면서 다산의 내면과 시대 모순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선집이었다. 오랜만에 마음이 흡족한 책씻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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