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축구, 그 빛과 그림자
지은이 : 에두아르노 갈레아노
옮긴이 : 유왕무
펴낸곳 : 예림기획
4년 전 나는 『시간의 목소리』(후마니타스, 2011)를 잡고 에두아르노 갈레아노의 글에 매료되었다. 『포옹의 책』(예림기획, 2007),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르네상스, 2004), 『갈레아노, 거울 그 너머의 역사』(2010, 책보세)를 연이어 잡았다. 하지만 『축구, 그 빛과 그림자』(예림기획, 2002)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읍내 유일의 서점에 책을 부탁했지만 구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재출간전문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놓친 고기가 커보이듯 아쉬움만 커져갔다. 품절이라는 딱지가 붙은 책은 나에게서 멀어져간 지 5년 만에 다시 만났다. 온라인 중고서적의 직배송 판매에 한 권이 떴다. 나는 부리나케 가트에 던져 넣었다. 배달된 책은 새 책이나 다름없는 개정증보판이었다.
책은 축구의 기원에서 역사, 인물, 사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1 - 2쪽의 간결한 분량에 담겨 읽기가 편했다. “비옥한 토지를 지닌 부유층 사나이들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는 반면, 신발도 제대로 못 신는 불쌍한 주민들은 애국적인 열정 때문에 서로 살상하며 피를 흘렸다.”(321쪽) 1969년 〈축구전쟁〉이라 불리는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간의 전쟁을 다룬 이야기 「눈물은 손수건에서 나오지 않는다」의 마지막 문장이다. 전쟁의 실상은 이렇다. 2차대전 종전 후 독립한 엘살바도르는 공업화를 추진했으나 봉건적 대토지 소유제 상태였다. 엘살바도르 사람들은 인접한 온두라스로 농업 이민을 떠났다. 1962년 온두라스는 토지개혁을 단행하면서 접경지의 엘살바도르 이주민을 쫓아냈다. 국경 분쟁이 전쟁으로 확전되었다.
비운의 축구선수로 우리는 콜롬비아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를 알고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우승후보 콜롬비아는 약체 미국에 1:2로 패했다. 수비수 에스코바르의 자책골이 컸다. 귀국길의 콜롬비아 국가대표팀은 숱한 비난에 시달렸다. 에스코바르는 여자 친구와 술집에 갔다가 괴한의 총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살해현장에 있었던 여자 친구의 증언은 경기에 엄청난 배팅을 걸었다가 큰 손해를 본 범죄조직이 저지른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축구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은 비극적 사건은 1964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일어났다. 페루와 아르헨티나의 경기 종료 직전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쏟는 관중을 향한 경찰의 과도한 진압이 원인이었다. 출구로 몰린 관중들 300명 이상이 압사했다. 198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아르헨티노스와 레이싱 클럽 간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페널티킥은 마침내 44번째 키커에 의해 승부가 갈렸다. 세계 신기록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전 세계 인류의 4분의 1 이상을 텔레비전 앞에 끌어 모았다. 우루과이 출신으로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양심적 좌파지식인 에두아르노 갈레아노(1940 - 2015)는 국제축구연맹 FIFA의 타락과 각국 권력과의 유착 관계, 부패한 이권 다툼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쳤다.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일수록 월드컵을 유치해서 세계인들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고 노력(477쪽)”했다. 이제 축구는 하나의 흥행물이고 사업이며, 수익성이 모든 것을 규정했다. 프랑스 철학자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는 이렇게 말했다. “가치가 있기에 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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