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대빈창 2019. 12. 20. 07:00

 

 

책이름 :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지은이 : 정현종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한국 주지주의 시의 새 지평을 열어 젖혔다는 시인을 나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옮긴이로 먼저 만났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민음사, 2007)와 『질문의 책』(문학동네, 2013) 이었다.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지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의 묵직한 주제를 무겁지 않은 시어로 풀어냈다. 내가 잡은 시집은 두 권으로 모두 절판된 시집을 재출간하는 시리즈 〈문학과지성 시인선 R〉을 통해서였다. 2003년 《시와시학사》에서 펴내고 〈문지 시인선 R5〉로 복간된 『견딜 수 없네』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으로 1989년 《세계사》에서 초판이 나오고, 〈문지 시인선 R15〉로 복간된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이었다.

시집은 부 구분 없이 모두 64편의 시가 실렸다. 해설은 철학자 김동규의 「봄과 연애」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시인과의 인연이 작용한 것인지 모르겠다. 철학자는 정현종의 시는 생명과 폭넓은 의미의 사랑으로 생명이 경시되고 편리주의·이기주의로 병든 오늘의 도시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나에게 시편들은 생태와 환경시로 읽혔다. 지구온난화가 불러 온 이상기후로 인한 지구별의 긴급한 SOS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마지막은 중학교재에 실린 시집을 여는 첫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9 - 10쪽)의 전문이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 그때 그 일이 /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 그때 그 사람이 / 그때 그 물건이 /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 더 열심히 파고들고 / 더 열심히 말을 걸고 /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 귀머거리처럼 / 보내지는 않았는가 / 우두커니처럼······ / 더 열심히 그 순간을 /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 꽃봉오리인 것을, /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 꽃봉오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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