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칼의 노래
지은이 : 김훈
펴낸곳 : 문학동네
소설을 잡기까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순전히 나의 독서 편식증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작가 김훈의 책으로 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화장」이 실린 소설집 『강산무진』과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 기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1·2』, 문학 기행집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하나·둘』을 잡았을 뿐이다. 장편소설은 주민자치센터 책장에 꽂혀있던 『공무도하』가 유일했다. 당대의 문장가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칼의 노래』다. 20여 년 동안 수십 권의 소설을 잡았지만 나는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1100여 쪽 분량에 내용도 만만치 않은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의 『카를 마르크스 - 위대함과 환상 사이』(arte, 2018)를 3분의 1쯤 읽어나가고 있었다. 신경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졌다. 나의 몸 상태가 책을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었다. 그때 사무실에 굴러다니던 『칼의 노래』(문학동네, 2012)가 눈에 뜨였다. 책은 〈생각의나무〉에서 2001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도서출판사는 부도가 났고, 〈문학동네〉에서 2012년에 다시 펴냈다. 2004년 3월 탄핵 국면에서 대통령 직무 정지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칼의 노래』를 다시 읽고 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었다. 대통령이 읽은 책 중에서 역대 가장 파괴력이 강했던 책이었다.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출간 6년 만에 100만부를 돌파했다.
내가 책을 멀리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순신 영웅화(?)’ 사업을 추진한 세력의 역사적 비정통성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이순신 리더십을 내세운 박 전 대통령은 아산 현충사를 성역화하고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을 세웠다. 일본 관동군 장교 출신이 쿠데타에 성공하여 친일 논란을 무마하기 위한 속내였다. 즉 “이순신 장군 영웅화는 박정희 우상화라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다른 하나는 사갈시하는 〈조선일보〉가 ‘동인문학상’을 운영하기 때문이었다. ‘동인문학상’은 장준하의 『사상계』가 1955년에 제정했다. 1967년 재정난으로 중단되었다가 1979년 동서문화사가 부활시켰다. 1987년(87년 6월 국민대항쟁으로 전두환이 물러났다. 조선일보는 군사독재를 등에 업고, 사세를 키워 일간지 판매부수 1위로 올라섰다)부터 조선일보사에서 인수해 운영했다.
나의 편식은 동인문학상 수상작보다, 동인문학상 후보를 거부한 작가들의 작품을 즐겨 찾았다. 2000년 황석영은 13년 만에 간행한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이 동인문학상 심사대상에 올라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후보 자체를 거부했다. 그는 말했다. “군사 파시즘과의 결탁으로 성장한 〈조선일보〉는 침묵과 수혜의 원죄의식으로 동참하게 된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그다.” 작가 공선옥은 2001년 장편소설 『수수밭으로 오세요』가 후보작으로 오른 것을 알고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녀는 불편했다. “일제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거나, 전두환·노태우 용비어천가를 노래한 것은 그렇다 치자. 보수는 전통 가치를 지키는 것인데 조선일보는 무조건 자기들끼리만 잘 살면 된다는 사람들이다. 없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조금도 없다.” 합리적 보수주의자 고종석은 2003년 소설집 『엘리야의 제야』가 후보에 오르는 것을 거부했다. 작가의 변은 이러했다. “조선일보는 수구·냉전·복고 세력의 선전국으로, 동인문학상은 한국 문단에 대한 조선일보의 아귀 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칼의 노래』의 압도적인 힘은 문장에서 나왔다. 작가는 말했다. "힘은 간단명료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어+동사’다. 아름다운 수사학에서 힘이 나오는게 아니다. 나는 그걸 이순신에게서 배웠다. 대학에서 배운 것이 아니다. 난중일기·임금에게 올리는 장계 같은 데서 배웠다." -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 첫 문장은 간결함의 극치였다. 인간의 잔혹성과 자연의 무심함이 네 마디로 압축되었다. 소설은 순결한 영혼의 군사전략가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시작으로 노량 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기까지의 삶을 다루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0) | 2020.01.09 |
---|---|
카를 마르크스 - 위대함과 환상 사이 (0) | 2020.01.06 |
축구, 그 빛과 그림자 (0) | 2019.12.26 |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0) | 2019.12.20 |
다산시선茶山詩選 (0) | 2019.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