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카를 마르크스
지은이 :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옮긴이 : 홍기빈
펴낸곳 : arte(아르테)
나의 학창시절 『자본론』은 금서였다. 안산공단으로 향하면서 〈이론과 실천〉사에서 나온 미색 표지의 『자본론』을 챙겼다. 후에 밝혀졌지만 가명으로 번역한 이는 강신준이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故 김수행 교수가 쉽게 풀어 쓴 『자본론 공부』(돌베개, 2014)를 4년 전에 잡았었다. 부피가 두꺼운 카를 마르크스의 평전을 덮으며 고인의 말을 떠올렸다.
“자본주의 사회가 영구불멸하리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현실 사회주의’ 사회의 몰락을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류 역사는 끝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과 같은 세계적 대불황에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나쁜’ 사람일 뿐입니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악전고투였다. 1100여 쪽 분량의 마지막 책장을 덮기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다. 1/3쯤 읽어나가다 겉표지를 다시 싸서 책장 한 구석에 밀쳐놓았다. 몸이 망가졌다.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처럼 표지에 가득 담긴 털북숭이 카를 마르크스가 웃고 있었다. 속된 말로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평전이지만 19세기 유럽의 정치사, 경제사, 사상사, 철학사, 지성사가 총망라된 내용이 버거웠다. 잡기 편한 소설을 집어 들었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처방된 약을 먹었다. 몸이 조금 가벼워졌다. 다시 책을 펼쳤고 간신이 책씻이를 했다. 서둘러 책 리뷰에 매달렸다.
2018년은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에서 생을 마감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 5. 5 ~ 1883. 3)의 탄생 200돌이 되는 해였다. 또한 러시아 혁명(1917년)이 발발한 지 100년, 마르크스의 대표작 『자본론』 1권(1867년)이 세상의 빛을 본지 150년이 되는 해였다. 책은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가 역사가의 시선으로 ‘인간’ 카를의 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냈다. 마르크스의 고전적 이미지는 역사·사회·인간의 비밀을 밝혀 준 프로메테우스였다. 저자는 카를을 무거운 바윗돌을 끊임없이 다시 끌어 올리는 고된 노동을 반복하는 시시포스로 그렸다.
책의 부제가 ‘위대함과 환상’으로 마르크스에게 덧씌워진 ‘환상’을 걷어내야 19세기 현실의 마르크스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죽은 뒤 그의 성품과 여러 성취에 대해 이야기들이 꾸며졌다. 이전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책의 목표였다. ‘엥겔스가 죽은 뒤 카를의 딸인 라우라는 엥겔스가 남긴 편지들을 세심히 뒤져서 엥겔스에게나 마르크스에게나 명성에 손상을 입힐 자료는 모조기 제거했다’(538쪽) 옮긴이 홍기빈 글로벌정치연구소 소장은 “‘마르크스주의’라는 달팽이 껍질 속에 숨어 있는 ‘마르크스’라는 민달팽이의 모습을 꼬리에서 두 개의 뿔까지 총체적으로 그려 낸” 평전이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크스는 1918년에 나온 프란츠 메링의 마르크스 평전에 기대었다. 제2인터내셔널의 정통적인 마르크스 상으로 그의 인격적 결함과 실수를 은폐하거나 모호하게 제기했다. 마르크스는 오로지 노동계급의 해방과 인류 진보라는 이상을 가진 혁명가로 역사적 영웅으로 그렸다. 즉 ‘과학적 사회주의’를 창시한 진정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시조였다. 90년대초 마르크스는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매장되어 버릴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현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속에서 마르크스의 생명력은 더욱 질기게 이어졌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 출간은 현재진행형이다. 프로젝트가 착상된지 1세기만인 2025년에 114권이 완간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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