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지율스님의 산막일지
지은이 : 지율
펴낸곳 : 사계절
“참! 이 나라가 어찌되려고 계집 중 한년이 밥 굶는다고 공사가 중단되다니, 그런 빨갱이 같은 년은 당장 굶겨 죽여야 돼.”
십오여 년 전 저쪽의 세월이었다. 외딴섬의 관공서 직원들은 한 집에서 하루 세끼 매식을 했다. 십오 여명의 사람들이 끼니때마다 북적거렸다. 어느 저녁식사 때였다. TV 화면에 눈길을 주던 제복입은 이가 거친 말을 쏟아냈다. 지율스님의 천성산 도롱뇽 소송과 생사가 고비에 이른 단식이 화면을 비추었다. 그는 게거품을 입에 물고 씩씩거렸다. 오래된 그 일이 떠올랐다.
스님은 2000년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공사를 반대하며 2003년부터 242일간 다섯 차례의 단식을 했다. 도롱뇽을 앞세운 천성산 살리기 소송에서 패한 스님은 단식을 끝냈다. 2006년 경북 영덕 칠보산 기슭의 산막으로 들어갔다. 생명을 파괴하는 자본과 권력에 맞선 단식으로 스님은 혼자서 걷지 못할 정도로 몸이 피폐해졌다. 열 가구의 작은 마을은 오래된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못자리 묘판 흙은 상토가 아니라 붉은 산흙을 퍼다 채로 고르는 삼십 여년 저쪽의 풍경이었다. 소가 논밭을 갈았고, 다락논은 낫으로 벼를 베었다. 경운기 피대에 연결된 소형 탈곡기로 알곡을 터는 일이 유일한 기계화였다. 닷새에 한 번 버스가 들어오는 산속 오지 마을의 칠순·팔순을 넘긴 어르신들은 사시사철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다 쓰러져가는 오래된 토담집을 수리해 사는 스님의 방문 앞에 할매들은 고춧가루, 나물 등을 슬그머니 놓고 가셨다. 스님이 없으면 탁자위에 몰래 만원 짜리 한 장을 올려 놓으셨다. 스님은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준 산골 오지의 할배, 할매, 아재, 아줌마, 귀농한 젊은이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삼십오 년 이장을 보면서 마을 살림을 수첩에 적는 이장님, 막대사탕 마니아로 사탕이 입에 녹는 시간으로 거리를 계산하는 나무 할배, 당뇨로 시력을 잃었지만 밭일을 척척 해내는 자야 아재, ‘대한민국’이 빠지면 얘기가 안되는 옥이 할아버지, 구성진 노랫가락에 시름을 날려 보내는 옥이·진국할매, 도시에서 팔 하나를 잃고 고향에 돌아와 알코올에 쩔어사는 호영이 총각 등.
흙벽돌, 외양간, 백열전구 외등, 순한 왕방울 눈, 코뚜레. 표지 사진은 양지목 마을의 정택네 아저씨 암소였다. 여덟 번이나 새끼를 낳은 늙은 암소는 송아지가 팔려가자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어미 소는 새끼와 떨어지면 근 열흘 동안 여물을 먹지 않고 운다고 한다. 스님은 말했다. "새끼를 잃고 우는 어미 소의 울음은 ‘소리’가 아니라 창자를 훑어내는 소리"라고. 삼사 일 울고 나면 그만 목이 쉬고, 일주일 쯤 지나면 탈진 상태가 되고, 그 상태에서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녹색평론에서 팜플렛 형태의 책자 두 권을 손에 넣었다. 『낙동강 before and after』(녹색평론사, 2010)은 스님이 직접 발로 찍은 4대강 사업 전 후의 낙동강 풍경을 담은 얇은 사진집이었다. 『지율스님의 산막일지』는 2008년 이명박 정권이 4대강에 삽질을 들이대자, 스님이 낙동강으로 향하면서 끝을 맺었다. 4대강 사업은 금수강산을 작살내고, 끼리끼리 호주머니를 불린 더러운 이면이 드러났다. 지율스님은 맨 몸으로 난도질을 막아섰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 시절 외딴섬의 그도 제복을 벗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개발지상주의에 영혼을 저당잡힌 그에게 책을 건네주고 싶었다. 토건에 의한 인프라 구축이란 '특정 토지의 미래 사용가치를 현재화함으로써 실제 가치보다 훨씬 큰 거품성 가치를 유발'시켜 그 이윤을 챙기는데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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