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처형극장

대빈창 2020. 2. 6. 07:00

 

 

책이름 : 처형극장

지은이 : 강정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알고 있나요? // 복음서의 뒷장을 열고 밤마다 / 神들이 도망다녀요 / 세상 어둔 습지에서 늙은 짐승들과 / 알몸으로 뒹굴어요 / 신의 사랑, 짐승의 사랑으로 / 해골들이 입을 열죠 / 골 속의 텅 빈 어둠의 말을 하죠 / 어둠의 분말들이 일제히 흩어져 울리는 / 높푸른 종소리를 좆아 올라가요 / 아아, 지옥이 거기 있어요 / 무너져 아름다운 핏물을 뿌리며 / 빛덩이가 채찍처럼 일렁여요 / 내 몸의 어떤 상처를 당신에게 후려드릴까요? / 비명도 절규도 잃어버린 당신들 / 목 메인 罪의 출구 같은 / 입술을 향하여

 

시집을 여는 첫 시 『아름다운 凶兆』(11쪽)의 전문이다. 사회평론가 고종석은 이렇게 평했다. “『처형극장』은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장신구다. 그 검붉게 화려한 말의 잔치상 앞에서 독자는 어질어질하다. 이 시집 하나로 강정은 우뚝한 시인이다.” 시인은 1971년 출생으로 우리나이 스물두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현대시세계』를 등단했다.

시단에 얼굴을 내민 지 4년 만인 1996년에 〈문학과지성 시인선 190〉으로 첫 시집 『처형극장』을 상재했다. 시집은 부 구분없이 52시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장은수의 「자궁의 죽음의 시학」이다. ‘미래파의 원조’로 젊은 시인들의 난해한 어법이 그에게서 비롯됐다는 이들도 있었다. 시인의 독한 전위적 서정은 그 난해함으로 나의 아둔함을 증폭시켰다. 시인은 2010년 미술작가 허남준과 밴드 〈THE ASK〉를 결성해 활동했다. 록밴드의 리드보컬이었다. 시인은 지금까지 첫 시집 『처형극장』(문학과지성사, 1996)에서 일곱 번 째 시집 『그리고 나는 눈먼 자가 되었다』(문학실험실, 2019)를 내 놓았다.

그렇다. 낭만주의자 시인 박정대 프로필에서 보았다. 장난스러운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의 멤버는 시인 박정대, 리산, 강정이었다. 나는 이들의 시에 묘하게 중독성을 일으켰다. 박정대의 시집 네 권과 리산의 시집 두 권이 책장에서 어깨를 겨누었다. 늦었다. 강정의 첫 시집이 이제 구색을 맞추었다. 시인의 한국일보 연재물인 문화 낯설게 보기의 『강정의 나쁜 취향』(랜덤하우스코리아, 2006)을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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