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여기 사람이 있다

대빈창 2010. 3. 6. 17:54

 

 

책이름 : 여기 사람이 있다

지은이 : 연정 외

펴낸곳 : 삶이 보이는 창

 

책을 읽어 나가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급기야 목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욕지기에 부르르 몸을 떤다. 그것은 이 땅의 참담한 현실에 대한 분노이면서, 자신에 대한 질책에서 연유한다. 마지막 인터뷰는 작가 조세희였다. 난쏘공이 나온지 벌써 30년이 되었다. 내가 알기로 이후 작가는 겨우 사진에세이 '침묵의 뿌리' 한 권을 우리 앞에 던져 놓았다. 작가로서의 임무방기가 아닌가. 아니다. 도저히 선생은 글을 쓸수 없었다. 참혹한 이 땅의 현실에 가슴 끓이는 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선생은 노동자의 파업 투쟁현장에서, 농민의 아스팔트 농사 판에서 곤봉과 방패를 든 경찰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 앞에서 선생의 가슴은 여전히 뜨거웠으나,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텔레비전 앞에서 작가는 슬펐고, 마음이 아팠다. 그 인터뷰 말미 선생의 동시대인에 대한 가슴저린 부탁이 나의 가슴을 비수처럼 뚫고 들어왔다. 그 한마디는 나를 아주 부끄럽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자. 냉소주의는 우리 적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렇다. 그동안 나는 냉소적이다 못해 염세적이었다. 고작 자기위안으로 삼은 것이 낙도 오지에서 뭘 하겠다는 것인가라는 자기합리화였다. 투쟁기금이나 후원금으로 달랑 몇푼 던져 놓고는 자기만족에 기꺼워한 것은 아닌지 참담하다. 2009년 1월 20일. 수도 서울의 한복판 용산에서 생계대책을 요구하며 망루에 오른 철거민에게 자본의 노예를 자임한 MB 정권은 경찰특공대를 투입했다. 가공할 미군의 신무기 실험대상이 가난한 나라의 테러리스트였듯이 강남 땅부자들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는 MB 정권은 땅 투기를 가로막는 가난한 자들이 테러리스트였다. 살인무기로 키운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것이 그 증거다. 또한 그들의 입으로 그렇게 떠들었다. 죽은 자들을 테러리스트라고.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화마에 휩싸여 공포 속에서 죽어갔다. 죽은 이들은 바로 무허가 판잣집과 12평짜리 전셋집을 궁전으로 여기며 가족과 오순도순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소박한 민중이었다. 1년2개월이 지난 현재 용산 참사는 법정 투쟁중이다. 하긴 법정싸움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아니 수사기록도 미공개라고 우기고. 재판부도 기피하는 오만방자한 MB 정권의 경찰. 이것이 무슨 민주공화국인가. 강남 땅부자들의 귀족국가이지.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가난한 자는 누구나 철거민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뉴타운, 경제문화도시, 한강르네상스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하지만 허위의식에 찌든 이 땅의 서민들은 '개발은 곧 발전이다'라는 마약에 중독되었다. 용역깡패에 맞고 쫒겨나면서도. 안 그런가. 아파트 평수를 한 평이라도 더 늘리겠다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용산참사의 주검이 들어있다.

 

p. s  검찰은 용산참사 철거민 7명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이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소리다. 즉 아들이 망루에 화염병을 던져 아버지가 불에 타 죽었다는 논리다. 용산참사는 MB정권의 계급적 성격을 가장 적확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그런데 스스로 떠든다. 서민을 돌보는 정치(?)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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