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오늘은 잘 모르겠어

대빈창 2020. 4. 2. 07:00

 

 

책이름 : 오늘은 잘 모르겠어

지은이 : 심보선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인 심보선은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왔다. 14년 만에 첫 번째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2008)를 상재했다. 나는 뒤늦게 시인의 데뷔시집을 손에 넣었다.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1)이 출간되었다. 첫 시집에 끌리는 나의 취향대로 패스했다. 세 번째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문학과지성사, 2017)가 6년 만에 나왔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시인의 근작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문학동네, 2019) 때문이었다. 2007년부터 쓴 글을 모아 펴낸 첫 산문집은 사회학자답게 한국 사회에 대한 신랄하고 날카로운 비판이 서려 있었다. 용산 참사 철거민의 죽음, 쌍용차 해고자의 자살, 세월호 유가족의 상처 등.

요즘 책읽기에서 시집에 끌리는 나는 산문집 대신 시집에 손을 뻗었다. 시집을 읽으면서 산문집의 아쉬움은 뒤로 물러났다. 구의역 소년 노동자의 죽음을 다룬 「갈색 가방이 있는 역」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연이은 자살을 읊은 「스물세 번 째 인간」 등 사회적 약자와 적극적 연대를 실천해 온 시인의 삶이 녹아있었다. 271쪽의 시집은 제법 두터웠다. 5부에 나뉘어 52시편이 실렸다. 시집 말미에 붙게 마련인 문학평론가나 시인의 해설과 발문이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부록으로 볼프강 에젤만(Wolfgang Eselmann)의 「당나귀 문학론」이 자리했다. 그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두 번째 시 「당나귀」의 각주는 윌리엄 스타이그의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당나귀와 함께 한 세벤느 여행』, 후안 라몬 히메네스의 『플라테로와 나』에 등장하는 당나귀 이름이라고 밝혔다. 시인의 「당나귀 문학론」에 따르면 당나귀는 고통 속에 춤을 추는 동물, 인내와 해방의 두 측면을 지닌 존재였다.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누구도 가지 않는 방식으로 가는” 당나귀에게서 시인은 문학의 숙명과 본질을 엿보았다. 마지막은 표제시 「오늘은 잘 모르겠어」(28 - 29쪽)의 전문이다.

 

당신의 눈동자 / 내가 오래 바라보면 한 쌍의 신(神)이 됐었지 // 당신의 무릎 / 내가 그 아래 누우면 두 마리 새가 됐었지 // 지지난밤에는 사랑을 나눴고 / 지난밤에는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볼 때 / 어제까지 나는 인간이 확실했었으나 // 오늘은 잘 모르겠어 // 눈꺼풀은 지그시 닫히고 / 무릎은 가만히 펴졌지 // 거기까지는 알겠으나 // 새는 다시 날아오나 // 신은 언제 죽나 // 그나저나 당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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