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한국음식문화 박물지

대빈창 2020. 4. 22. 07:00

 

 

책이름 : 한국음식문화 박물지

지은이 : 황교익

펴낸곳 : 따비

 

문고판으로 묶인 세트에서 두 번째 책을 손에 잡았다. 정확히 100꼭지가 엮였는데 한 꼭지의 분량은 두 쪽이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한국음식을 정의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첫 번째는 ‘한국의 자연’이 만들어 낸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어야 하며, 두 번째는 ‘현재 한국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으로 먹는 음식’이다. 대표적 한국음식으로 떡, 막국수, 새우젓, 빈대떡, 부침개, 도토리묵, 간장, 된장, 고추장의 기원과 맛의 변화를 추적했다. 외국음식 소바, 오뎅, 자장면, 단무지, 피자, 햄버거, 커피가 어떻게 한국음식으로 정착하는지 여정을 밝혔다.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육류는 돼지고기로 삼겹살은 ‘국민메뉴’의 자리에 올랐다. 내가 어렸을 적 돼지고기는 명절날 국으로 끓이거나, 삶아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식당에 프로판 가스가 공급되면서 구워 먹기 시작했다. 삼겹살이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비싼 쇠고기 대신 먹을 수 있다는, 중산층의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정부는 쇠고기 값 폭등을 막으려 돼지고기 육성책을 썼다. 저자는 삼겹살의 맛은 거의 지방에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이 타면서 내는 고소한 냄새와 그 지방이 입안에서 씹히면서 내는 야들한 촉감을 즐기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여기에 상추와 된장, 마늘, 풋고추를 얹혀 쌈으로 먹었다.

(전라도에서는) ‘홍어회를 최상의 음식으로 여겼지만 외지에서는 그 지역에서나 먹는 별난 음식으로만 여겼다.’(237쪽) 내가 홍어를 처음 맛본 것은 25여년 저쪽의 세월이었다. 직장 동료의 결혼식장이 전라도 광주였다. 답사의 묘미에 빠져 들었던 그 시절의 나는 동료 몇 명과 함께 직장의 대표(?) 하객 자격으로 먼 길을 나섰다. 식당 문을 밀치자 난생 처음 맡는 큼큼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억센 사투리의 남도 사람들은 서로 젓가락을 들이대며 잔치상의 풍성함을 추켜세웠다. 동료들은 냄새의 범인으로 분홍 회감이 담긴 접시를 저리 밀쳐 놓았다. 나의 객기였는지, 회를 탐하는 식성 때문이었는지 한 점을 입에 물었다. 그후 나는 홍어 마니아가 되었다. 김포도서관앞 허름한 홍어회 전문 선술집에 발걸음을 자주 했다. 주인 여편네는 단골이라고 굵은 소금이 담긴 종지와 노란 홍어애를 따로 내 놓았다.

‘1970 ~ 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중년의 한국인은 으레 2차 술자리로 생맥줏집을 간다.’(256쪽) 내가 생맥주를 처음 맛본 것이 고교 3년으로 기억된다. 흰곰이 커다란 생맥주 잔을 든 간판을 세운 OB 생맥주집이 면사무소 소재지에 들어섰다. 삼복더위에 1000cc 생맥주를 한 번에 들이켜는 시원함이란. 나의 술에 대한 객기는 술집 주인장과, 1000cc 생맥주를 입 안 떼고 한 번에 마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쥐포가 대한민국의 주요 간식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이다. 갑자기 시장과 가판에 대량의 쥐포가 깔렸다.’(257쪽) 내가 쥐포다운 쥐포를 맛 본 것은 대학시절,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강이 되면 고향 쥐포를 가져와 소주잔을 기울이던 여수 후배 덕분이었다. 그 쥐포는 길거리 쥐포와 다르게 두께가 상당했다. 책에 나오는 예전 일본 수출용 쥐포였던 여수 쥐포 가공 공장의 후손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혀끝에 괸 쥐포의 맛을 잊을 수 없어, 섬을 찾는 작은형 손에 30개들이 쥐포 뭉치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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