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지은이 : 승효상
펴내곳 : 돌베개
나는 표제를 보고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1923 - 1981)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떠 올렸다. 사회적 건축가 故 정기용 선생의 『사람·건축·도시』를 읽고 손에 넣은 책이었다. 소설은 마르코 폴로(1254 - 1324)가 자신이 여행했던 세계의 도시들에 대해 쿠빌라이 칸(1215 - 1294)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누군가는 말했다. 이 시대의 문장가는 소설가 김훈이라고. 하지만 나는 건축가 승효상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건축가의 책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컬처그라퍼, 2012) / 『건축, 사유의 기호』(돌베개, 2004) / 『빈자의 미학』(느린걸음, 2016) /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돌베개, 2016) 네 권을 읽었다. 다행스럽게 520여 쪽에 달하는 『묵상(黙想)』(돌베개, 2019)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포만감에 흡족했다.
건축가는 말했다. “건축 설계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일이다. 따라서 건축 설계를 하는 이들이 해야 하는 우선의 공부는 그 건축 속에서 살 이들의 삶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29 - 30쪽) 즉 건축가는 공학자가 아닌 인문학자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책은 건축가의 도시건축론이었다. 저자는 20여 년 전 자신의 건축 개념을 ‘빈자의 미학’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가난하고자 하는 이를 위한 건축이었다. 절제하며 검박한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한 건축론이었다. 건축가는 우리 도시는 권력과 자본을 위한 기념비적 건축과 천편일률적인 마스트플랜에 집착해왔다고 말했다. 이제 허망함만 안겨주는 스펙터클한 건축대신 좁은 골목길, 작고 낡은 건물, 자연이 만든 삶터,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공영역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는 말은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 - 1965)이 전쟁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의회 의사당을 다시 짓겠다는 연설에서 행한 말이다. 이 땅은 독선과 전제, 이기와 편향, 분열과 파편으로 가득한 나머지 몰염치하고 폭력적인 사회가 되었다. 이는 유신 시절 독재자의 압력으로 멋대로 설계된 국회의사당, 노태우 정권 때 총독관저 터에 지은 청와대, 땅이 품은 역사를 깡그리 지워버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미래안·푸르지오·캐슬 등 국적불명의 치졸한 외래어 이름의 아파트 단지 등이 우리의 몰골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땅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건축가는 그동안 93년 전문화재청장 유홍준의 논현동 자택 수졸당(守拙堂), 2000년 장충동 ‘웰콤시티’ 사옥, 2006년 공주 마곡사 조계종 불교 전통문화센터, 2009년 경남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등을 설계했다. 건축가가 운영하는 사무소의 이름은 이로재(履露齋)로 ‘이슬을 밟는 집’이라는 뜻이다. “집은 우리 선조에게 인문정신 그 자체였으니 당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방향을 다듬기 위해 대단히 중요한 자기선언”(141쪽) 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건축가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 독일의 철학자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 1888 - 1965)의 책 두 권을 가트에 넣었다. 『침묵의 세계』와 『인간과 말』. 철학자는 말했다. “살아 있는 침묵을 가지지 못한 도시는 몰락을 통해서 침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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