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대빈창 2020. 5. 28. 07:00

 

 

 

책이름 :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지은이 : 곽재구

찍은이 : 최수연

펴낸곳 : 해냄

 

나는 시인 곽재구하면 1981년 《중앙일보(中央日報)》신춘문예 당선작 「사평역(沙平驛)에서」가 떠올랐다. 톱밥 난로가 지펴진 밤새 눈 내리는 대합실에서 삶의 고단함에 지친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는 장면을 묘사한 시는 80년대 대표적인 서정시로 한국인들에게 친숙했다. 2003년 《열림원》에서 출간된 시인의 두 권의 산문집은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시인이 만난 고금의 작가를 통한 '예술의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 『곽재구의 예술기행』과 시인이 전국 곳곳의 포구를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채집해 놓은 『곽재구의 포구기행』이었다.

책의 표제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의 타이틀은 ‘곽재구의 신新 포구기행’이었다. 우리나라 곳곳의 작은 포구들을 찾아 떠난 여행 산문집 『곽재구의 포구기행』의 후속편이었다. 시인이 발품을 판 해안과 섬 그리고 만(灣) 33곳이 25편의 이야기에 담겼다. 이 땅의 촌락과 자연을 카메라에 담아 온 최수연 사진작가가 동행하여 찍은 52컷의 사진이 실렸다. 우리나라의 논과 일소(農牛)를 찍은 두 권의 사진집 『논』과 『소』는 일찌감치 나의 손을 탔다.

나는 시인이 포구를 찾으면서 동행하거나 만나거나 떠올린 인물들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군산 째보선창의 강형철 시인과 시인 한하운 소록도 시비, 서귀포 보목 포구의 소설가 임철우와 구강포의 다산 정약용과 백련사 여연 스님, 묵호의 소설가 심상대와 진도 팽목의 故 조공례 할머니(1925 - 1999,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 들노래 예능보유자), 목포의 가수 이난영과 강릉(하슬라)의 시인 정지용. 넙도초등학교의 동시 쓰는 어린이 소산이·박서연·박지효와 1992년 임수경문학상 수상자 박기태(박지효의 아빠), 제주 조천의 카페 ‘하루 하나’의 단골손님 가수 장필순과 이효리, 벽련포의 서포 김만중과 거제도 지세포(知世浦)의 헤르만 헤세, 보성 벌교 장도의 섬 여행가 이승준과 시인 나해철, 욕지도 자부포(自富浦)의 화가 이중섭.

챕터 「바람 많이 불고 폭풍 치는 날 여행 떠나고 싶었다」는 시인이 서귀포 보목포구에서 10년의 세월이 흘러 만난 사람과 동행하는 이야기다. ‘1981년 1월 인간과 나는 처음 만났다. 1월 1일 아침 신문. 신춘문예. 고통과 고독의 문청시절 끝에서 인간은 한 중앙지의 소설에 당선이 되었고 나는 시에 당선이 되었다. 인간과 나는 같은 지방 소재 국립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인간은 영문과에 재학 중이었고 나는 국문과에 다녔다.’(60쪽) 여기서 지방 국립대학은 전남대였고, 인간은 소설가 임철우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임철우의 당선작은 198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개도둑」이다. 친구는 시인의 등단작 「사평역(沙平驛)에서」를 1983년에 소설로 다시 등장시켰다. 마지막은 서포 김만중이 노도(櫓島)에 유배되면서 처음 쓴 시 「어머니를 그리며(思親詩)」(266쪽)의 전문이다.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립다는 말 쓰려 하니 / 글자도 되기 전에 눈물 이미 흥건하네 / 몇 번이나 붓 적셨다가 던져버리네 / 남해에서 쓴 시는 문집에 실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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