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대빈창 2020. 5. 18. 07:00

 

 

책이름 :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지은이 : 정태춘

펴낸곳 : 천년의시작

 

『시인의 마을』, 『사랑과 人生과 永遠의 詩』, 『새벽길/우네』, 『떠나가는 배』, 『북한강에서』, 『무진, 새노래』, 『아, 대한민국···』, 『92년 장마, 종로에서』, 『정동진/건너간다』,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정태춘(66)·박은옥(63) 부부가수가 내놓은 솔로와 듀엣 앨범명이다. 책이름은 마지막 앨범(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에서 따왔다. 민주주의의 갈증에 허덕였던 8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책이었다. 노래가사 121곡 모음집이었다. 책 앞날개 이력을 보니, 가수는 평택 도두리에서 나고 자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투쟁을 떠올렸다. 주민들은 4년간 평화적 생존권 불복종 투쟁을 펼쳤다. 2007년 3월 25일 935일째 마지막 촛불행사가 열렸다. 가공할 국가 폭력은 평화롭던 한 농촌 마을을 지워버렸다.

가수와 '바보(?)'라 불렸던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돈독한 사이였다. 가수는 자발적으로 그의 유세현장에 여러 번 동행했다. 가족과 함께 중국집 뷔페에서 식사를 하는 사이였다. 가수는 1990년 초 사전심의 폐지운동에 나섰다. 1996년 헌법재판소에 ‘가요 사전 검열’ 위헌 심판 제청을 냈다. 그는 검열 철폐 기자회견장에서 격려사를 했고, 가수의 공연장에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1909년 일제 ‘출판법’이래 독재정권에서 근 8 ~ 90년을 존속한 검열이 드디어 폐지되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 법률대리인으로 ‘위헌 제청’ 싸움을 함께 했던 변호사가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가수는 고향 사람들과 함께 미군기지 반대투쟁에 나섰다. ‘대추리는 우리 마을 도두리의 동북쪽 들판 건너 마을’(261쪽)이었다. 가수는 시위현장에서 수갑과 오랏줄에 묶인 채 연행되었다. 파시즘에 맞섰던 시대 '바보(?)'와 가수는 동지였다. 국가수반 대통령과 고향을 미군기지에 뺏긴 가수는 서로 마주섰다. 분단국가의 모순이었다.

데뷔시절 서정성 짙은 가사로 우울한 시대를 노래했던 대중가수 정태춘은 80년대 중반 가장 널리 알려진 민중가수였다. 내가 정태춘을 처음 만난 공연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지 자선공연인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 음악극이었다. 1989년 말에서 1990년까지  전국 28개 대학에서 순회 공연되었다. 미국의 거센 한국 농업시장 개방 압력에 맞서 반미감정이 솟구쳤던 시절이었다. 그후 가수는 전교조, 철거민, 양심수, 농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거리의 투사가 되었다. 강렬한 사회 비판의식이 담긴 그의 음반은 사전심의로 모두 불법음반이 되었다.

나는 1990년 겨울, 안산공단의 한 화공약품 공장에 몸을 담았다. 고잔동 지하방 자취 노동자의 피로를 푸는 유일한 낙은 정태춘의 노래를 듣는 것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휴대용 빨간 카셋트에서 흘러 나온 노래는 정태춘의 7집 앨범이 담긴 테이프 『아, 대한민국···』이었다. 시골에서 농사짓다 야반도주한 가난한 젊은 부부는 지하 셋방에 터를 잡았다. 아빠는 공장으로, 엄마는 파출부로 맞벌이를 나가며 흉흉한 세상인심에  다섯 살, 세 살짜리 남매를 방에 놔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었다. 어린 남매는 불장난을 하고 놀다 이불에 옮겨 붙어 질식사했다. 「우리들의 죽음」을 반복해 들으며 나는 이 땅의 노동해방을 꿈꾸었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해설 「징후에서 현실로 - 정태춘 가사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읽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태춘의 정치성은 폭넓은 일상생활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바로 그 일상성의 두터운 토대가(우리로 하여금) 그의 정치성을 더욱 신뢰하게 만든다. 그의 정치성은 ‘기획’된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도 진지한 일상의 축적 속에서 자연스럽게 분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북한강에서」(132 - 133쪽)의 1절이다.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 강에 /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 또 당신 이름과 / 그 텅 빈 거릴 생각하오 / 강가에는 안개가 /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