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공부이야기
지은이 : 장회익
펴낸곳 : 현암사
한국의 인문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명문을 쓰는 작가로 나는 장. 회. 익. 이름 석자를 오래전에 귀동냥했다. 돌이켜보니 그 세월이 십여 년이 넘었다. 명문은 “나는 지금도 공부가 제일 좋습니다.”를 외치는 한성학원 이사장 장회익(82才)의 『공부도둑』(생각의나무, 2008)을 가리켰다. 책은 대폭 손을 본 새 얼굴을 6년 만에 내밀었다. 『공부이야기(현암사, 2014)는 보기 드문 잘 쓴 회고록이었다. 명문장가는 의외로 인문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였다. 나는 책을 읽으며 삶에 깊은 인상을 주었던 인물들 수십 명을 등장시킨 특이한 형식의 자서전 『피터 드러커 자서전』(한국경제신문, 2005)을 떠올렸다. 책은 평생을 끌어 온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이었다.
저자에 다가서려면 ‘온생명사상’을 먼저 알아야 했다. 1988년 국제학술대회에서 장회익이 처음 제시한 개념이었다. 생명현상은 개개의 생명 하나하나로 설명할 수 없고 최소한 ‘에너지원으로 태양과 그 에너지원을 활용해 살고 있는 지구’ 정도를 포함해야 성립되는 하나의 ‘물리학적 단위’라는 주장이었다. 이 단위를 ‘온생명’이라 하고, 온생명 속의 각각의 개체는 ‘낱생명’, 하나의 낱생명에 대한 다른 온생명의 관계를 ‘보생명’이라 명명했다. ‘온생명( Global Life)’ 개념은 우리 학계의 독창적이고 자생적인 이론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책은 독자적인 생명 개체인 ‘온생명’을 세우기까지의 공부 역정을 풀어놓았다.
급진적(radical)의 어원은 뿌리(root)로 밑둥까지 파고드는 정신을 가리켰다. 저자가 말했듯이 ‘생명학’은 가장 급진적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의 뿌리인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장회익 교수가 녹색대학 총장에 취임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자본은 생명에 적대적이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생태기반경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인슈타인은 학문적 사색을 위한 구체적인 자리로 등대지기를 꿈꾸었다. 저자도 ‘온돌방 하나와 하루 세 끼 식사 그리고 무제한의 자유 시간이라는 꿈’(197쪽)을 꾸었다. 이것이 허용된다면 기꺼이 학문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 물리학자의 꿈이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은 고수끼리 통했다. 나는 이 말에서 이 땅의 고승 효봉, 경허, 석전 등의 오도송(悟道頌)을 떠올렸다. 마지막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깨달음(422쪽)의 한 구절이다. “나는 스스로 너무도 깊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한 부분이라 느끼고 있기에, 어느 한 개인의 구체적 존재가 이 영원한 흐름 속에서 시작을 가지게 되고 끝을 가지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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