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나무 뒤에 기대면 어두워진다

대빈창 2020. 6. 12. 07:00

 

 

 

 

책이름 : 나무 뒤에 기대면 어두워진다

지은이 : 위선환

펴낸곳 : 달아실

 

문학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그가 詩를 작파한 것이 1969년 겨울이었다. 1941년 장흥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 2월 제1회 용아 문학상으로 등단했다. 34세로 요절한 용아 박용철(龍兒 朴龍喆, 1904 - 1938) 시인을 기리어 전남 광주에서 제정한 상이었다. 심사위원은 서정주와 박두진이었다. 신인상의 첫 수상자는 문학적 멋(?)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좋은 시’를 외면하고 ‘난해한 시’를 긁적인 신인은 다형 김현승 선생께 따끔한 소리를 들었다. “이런 시로는 안 된다.” 시적 성취에 대한 불안과 갈등에 폭음하고 자학했다.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그는 문학에서 멀어졌다. 가난이 싫었던 시인은 시를 끊고 하급 공무원이 되었다. 1999년 4월 정년퇴직했다. 시를 떠난 지 30년 만에 다시 원고지에 매달렸다.

시인 위선환(79)은 2001년 3월 『현대시』에 「교외郊外에서」외 2편을 발표하며 재등단했다. 이후 시인은 첫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현대시, 2001)에서 일곱 번째 시집 『시작하는 빛』(문학과지성사, 2019)까지 꾸준히 시를 발표했다. 시집은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현대시, 2001)와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현대시, 2003)의 합본 시집이었다. 시집은 1·2부 62편씩 124편이 실렸다. 두 시집에 실렸던 연작시 「탐진강」 17편은 따로 발간된 『탐진강』(문예중앙, 2013)에 실었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오형엽의 「적막, 혹은 무한의 깊이」였다. 나는 해설을 읽어 나가다 묵은 글이라는 것을 알았다. 「탐진강 11」이 인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2003. 8.에 쓴 글이었다. 두 번째 시집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에 실린 글을 합본 시집에 그대로 살렸다.

30년 만에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의 발걸음이 강화도에 닿았다. 「눈썹바위에서 노을을 보다」는 석모도 보문사 마애관음좌상, 「비 갠 뒤」는 전등사 대웅전 처마 목각나부상을 시의 소재로 삼았다. 마지막은 「바람 속에서」(140쪽)의 전문이다.

 

끝없는 들판을 바라본 적 있다 개미 한 마리 안 보였다 오직 바람이 불어서 // 개가 걸어갔다 절뚝거리면서 다리가 꺾이면서, // 그 며칠 사이에 // 가슴 안 깊이에다 눈물방울을 갈무리하던, 비틀거리면서 넘어지면서 빈 들을 건너던 시절이 // 덧없이 저물었다 // 바라보고 서 있어도 이내 어둔 들 건너에 불빛 두엇 켜지고, 거기서 // 개가 짖어댔다 닳고 쉰 소리로 지금까지 저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