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추사 김정희

대빈창 2020. 6. 25. 07:00

 

 

책이름 : 추사 김정희

지은이 : 유홍준

펴낸곳 : 창비

 

 

25여 년 전 저편의 세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을 잡고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망가진 몸으로 낙향한 나는 현장에 남은 동지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삶의 중심을 잃고 많이 흔들렸다. 시간만 나면 배낭을 메고 답사에 나섰다. 어느 해 내포內浦 지역을 떠돌다 예산의 추사고택에 발길이 닿았다. 퍼붓는 폭염을 피해 도망치다시피 떠나는 바람에 추사의 무덤과 반송盤松, 그리고 고조부 김흥경 묘소의 백송白松을 놓쳤다. 후일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지만, 서해 작은 외딴섬에 둥지를 틀고서 답사에 대한 열정도 점차 시들해졌다.

그 후 나는 인문학자 유홍준의 글에 몰입되었다. 저자가 그동안 쏟아낸 책들이 책장 두 칸을 차지했다. 표제 「山崇海沈: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가 눈에 익었다. 그렇다. 2002년 학고재에서 출간된 3권짜리『완당평전』의 2권 표제였다. 저자에게 제18회 만해문학상을 안겨 준 책은 수많은 오류가 발견되어 수정을 거듭하다 절판시킬 수밖에 없었다. 후기는 이랬다. “『완당평전』이 누더기가 되고 나 자신은 만신창이가 될지라도 완당의 삶과 예술, 학문이 좀 더 완벽하게 복원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그런 계기를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것이다.”라고.

저자는 절치부심切齒腐心했다. 16년 만에 『추사 김정희』의 전기를 새롭게 펴냈다. 서예, 경학, 금석학, 고증학, 다도, 시, 그림, 감식안, 실학 등 다방면에서 일세를 풍미한 추사 김정희(1786 - 1856)의 생애를 총 10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명망 높은 월성위 집안의 천재성을 드러낸 어린 시절. 부친 김노경의 동지부사冬至副使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경의 옹방강, 완원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 북한진흥왕순수비, 무장사비의 고증. 국제적 명성의 완당바람. 제주도 유배시절. 강상시절. 북청 유배시절. 과천 초당의 마지막 삶. 그림 「세한도歲寒圖」, 「불이선란不二禪蘭」과 서예 「침계梣溪」, 「대팽고회大烹高會」, 「차호호공且呼好共」등 책에 실린 도판 280여점은 독자의 눈을 맑게 했다.

원로사학자 강우방은 『추사 김정희』도 『완당평전』처럼 위작僞作을 추사의 그림과 글씨로 대거 둔갑시켰다고 비판했다. 표제작 「산숭해심山崇海沈」부터 추사의 작품으로 공인되지 않았다. 첫 장의 〈소치연구회〉소장의 「초의에게 주는 글」처럼 편지를 예서로 쓰는 사람은 절대 없다고 한다. 강우방은 16년 전 「명선茗禪」의 위작을 밝혔었는데 책에 그대로 실렸다. 간송미술관 소장의 추사 글씨 70%가 위작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추사의 글씨는 물론, 그림까지 진작眞作으로 둔갑시켰다고 증언했다. 추사의 그림에서 「세한도歲寒圖」와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두 점을 제외한 난초화나 산수화는 거의 가짜 그림이라고 했다. 도판으로 실린 「고사수요도高士消遙圖」, 「추수백운도秋樹白雲圖」는 위작僞作이었다.

책은 우리나라 회화사의 대가 동주 이용희(1919 - 1997) 선생의 말을 세 번 인용했다. 1990년 연세대백주년기념관에서 있었던 추사에 대한 강의와 봉은사 판전에 대한 이용희 선생의 생각이었다. ‘완당바람’은 동주 선생이 처음 쓴 말이었다. 90년대 나는 흔들리는 삶을 곧추세우려 우리문화 답사와 독서에 매달렸다. 그 시절 참고도서로 《학고재》의 책은 무조건 손에 넣었다. 책장의 먼지가 뽀얗게 핀 『우리나라의 옛 그림』을 펴들었다. 동주 선생은 ‘우리나라의 옛 그림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완당바람은 한국이라는 땅에 뿌리 뻗고 자라날 그림의 꽃나무들을 모진 바람으로 꺾어버린 것’(352쪽) 이라고 부정적 의미로 해석했다. 저자는 책에서 추사 김정희를 ‘국적을 떠나 예술 자체의 높은 경지를 지향했던 국제주의자’(231쪽)로 추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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