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일침一針

대빈창 2020. 7. 13. 07:00

 

 

책이름 : 일침一針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김영사

 

한문학 문헌들에 담긴 전통의 가치를 현대의 언어로 되살려온 고전인문학자 정민의 글을 근래 자주 접하고 있다.『일침』, 『조심』, 『석복』,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습정』. 책은 저자의 ‘세설신어(世說新語)’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었다. 초판 1쇄 발행일이 2012. 3. 27. 이었다. 세설신어(世說新語)는 당대의 가십(gossip)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일침(一針)의 부제는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으로 고전의 구절을 주제에 따라 25개씩 네 갈래로 묶었다. 음식에 얹은 고명처럼 강세황의 「자화상」외 8점의 한국화와 추사의 친필, 다산의 메모가 각 1점씩 실려 독자의 눈을 맑게 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서양의 아포리즘에 대비되는 동양의 고전적 잠언으로 읽었다. 지은이는 일기일회(一期一會)부터 대발철시(大鉢鐵匙)까지 100개의 사자성어(四字成語)을 통한 차고술금(借古述今), 즉 옛 것을 빌어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두 번째 꼭지 심한신왕(心閒神旺)은 청淸말의 전각가 등석여가 인보印譜에 새겼다. 마음이 한가하니 정신의 활동이 오히려 왕성해졌다는 말이다. 내가 꿈꾸고 실천하고자하는 작은 외딴섬의 삶이었다.

우작경탄(牛嚼鯨呑)은 독서법에 대해 이야기였다. 우작(牛嚼)은 소가 여물을 빨리 먹어 일단 배를 채운 뒤 여러 번 되새김질해서 완전히 소화시키는 것으로 ‘정독(精讀)’을 의미했다. 경탄(鯨呑)은 고래가 큰 입을 벌려 바닷물과 물고기를 통째로 삼키는 것으로 ‘다독(多讀)’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나의 독서법은 ‘경탄(鯨呑)-다독(多讀)’이었다. 공자는 죽간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지도록 『주역』을 읽었다. 두보는 사내대장부는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한다고 했다.

나의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꼭지는 남산현표(南山玄豹)였다. 도답자陶答子는 3년간 질그릇을 구워 재산을 세 배나 불렸다. 아내는 돈벌이에 혈안이 된 남편에게 간했다. 도답자는 들은 체도 않고 부의 축적에 골몰해 5년이 지나 엄청난 치부로 백 대의 수레를 끌고 왔다. 도답자의 아내는 아이를 안고 울었다. 시어머니가 기쁜 날 운다고 크게 구박을 했다. 그녀가 말했다. “남산의 검은 표범(玄豹)은 안개비가 7일간 내려도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지 않는다. 개나 돼지는 주는 대로 받아먹어 제 몸을 살찌우지만, 앉아서 잡아먹히기를 기다릴 뿐이다. 나라가 가난한데 집은 부유하니 이는 재앙의 시작일 뿐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내쫓았다. 1년도 못되어 도답자는 도둑질한 죄로 죽임을 당했다. 어린 표범은 털을 기름지게 해서 무늬를 이루려고, 숨어서 해를 멀리했다. 어는 순간 짙고 기름진 무늬로 변한 표범의 변화는 참으로 눈부셨다. 『주역周易』의 군자표변君子豹變은 군자는 표범처럼 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표범의 부스스하고 얼룩얼룩하던 털은 내면이 들어차면서 어느 날 빛나는 무늬로 바뀌었다. 그렇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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