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유물을 통해 본 세계사
지은이 : 하비 래클린
옮긴이 : 김라합
펴낸곳 : 세종서적
『스콧 니어링 자서전』의 옮긴이 김라합이 눈에 익었다. 책장을 둘러보았다. 20여 년을 훌쩍 넘긴 책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인천 부평역 앞 한겨레문고에서 구입한 책들이었다. 책술에 스탬프로 찍힌 구입날짜와 서점 상징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블로그에 책 리뷰를 포스팅하기 전에 읽은 책들이었다. 나는 세월 묵은 책을 다시 잡기로 했다. 초판 발행년도가 1997년이었다. 뽀얗게 쌓인 먼지뭉텅이를 수건으로 탁탁 털어냈다. 가장 먼저 손에 잡은 책은 옮긴이가 김라합이었다. 책은 먼 옛날 지구에 떨어진 운석으로 추정되는 이슬람교의 성소 카바의 검은 돌에서 AD 1977년 20세기 인류의 지구생활을 담은 자료가 입력된 보이저 1·2호의 금도금 레코드까지 41꼭지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표제의 ‘세계사’는 ‘서양사’로 고쳐야 마땅했다.
성(聖) 유물은 프랑스 샤르트르 성당의 예수 출산 시 입었던 성모 마리아의 베일·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썼던 가시관, 예수의 시신을 감싼 아마포 토리노 수의, 성 야누아리우스의 피, 그리스도와 제자 인물상이 새겨진 은잔 안티오키아 성배(聖杯), 기적으로 숭배 대상이 된 어린아이 입상 아라코엘리의 아기상을 소개했다.
특이하게 신체 일부가 남은 유물은 미국 독립의 아버지 조지 워싱톤의 틀니, 나폴레옹의 페니스,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의 인물 모형, 프랑스 외인부대 지휘관 당주 대위의 나무손, 영국의 시인 존 밀턴과 엘리자베스 바레트 브라우닝의 머리카락이 담긴 유물함, 코끼리 인간 조지프 캐리 메릭의 유골,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뇌가 있었다.
그 외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 진 돌기둥,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 앗시리아의 검은 오벨리스크, 예루살렘의 실로암 비석,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 로제타석, 고대 로마 유리그릇 포틀랜드 항아리, 4세기 비잔틴 제국 조각 루벤스 꽃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채식사본(彩飾寫本) 켈트서, 윌리엄 노르망디공의 잉글랜드 정복그림 자수품 바이외 태피스트리·윌리엄의 잉글랜드 토지대장 둠즈데이북, 스페인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라 왕비가 하사한 콜롬버스의 특권록, 손으로 만든 가장 오래된 항해용 지도 칸티노 지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 호프 다이아몬드, 천문학자 핼리의 천문관측 노트 두 권, 한 장의 양피지 문서 독립선언문, 트라팔카 해전에서 죽을 때 입었던 넬슨 부제독의 군복 상의, 영국 런던 탬스강에 140년 동안 놓였던 런던교, 세계에서 가장 비싼 1센트짜리 마젠타 우표, 노예제도 폐지론자 존 브라운이 처형을 기다리며 읽은 성경책, 피격 당한 후 죽어 누웠던 링컨의 침대, 라이트 형제의 최초 비행에 성공한 동력 비행기, 베이브 루스의 60번째 홈런 방망이 등.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유물들은 책을 잡으면 쉽게 한눈을 팔 수 없게 만들었다.
전 세계 인류에게 핵 공포를 각인시킨 원자폭탄 ‘꼬마(Little Boy)’를 히로시마에 투하시킨 것은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Enola Gay)였다. 폭격기 조종사 폴 리버츠(Paul W. Tibbets. Jr) 대령은 자신이 몰게 된 항공기에 그의 어머니 이름을 붙였다. 나의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유물은 두 개의 인류화석이었다. BC 320만 년 전 가장 오래된 인류 조상중 하나인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화석인간 루시(Lucy)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이 에티오피아 아파르 삼각지에서 원시 인류의 화석을 발굴했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로 유골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필트다운인은 영국 서섹스 지방 필트다운의 자갈 채취장에서 발견된 뼈 조각들이었다. 범죄자들은 화석의 일부를 화학약품 처리하고, 다른 방법을 통해 고대인간 화석처럼 변조했다. 그 뼈들은 천년의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사회적 존경과 명성을 탐한 일군의 범법자들이 조작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