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부끄러움의 깊이
지은이 : 김명인
펴낸곳 : 빨간소금
문학평론가 김명인의 서가 한쪽 벽에 좌우명이 쓰인 붓글씨 작은 액자가 걸려있다. 매천 황현의 절명시 중 한 구절이었다. 〈난작독서인(難作讀書人)〉 ‘책 읽는 사람 되기가 참 어렵다’는 의미였다. “혁명가의 삶을 살고자 했으나 얼마 못 가 한갓 문필가의 삶이 왔고, 또 가난한 문필가의 삶조차 그대로 지키지 못하고 어정어정 대학교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22쪽)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한 좌파 지식인의 회한이 담긴 글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부끄러움’과 ‘성찰’이었다.
글쓰기 40년 문학평론가의 첫 산문집이었다. 1부 ‘저기 낯선 남자 하나’ 25편의 글은 세월의 흐름과 자기정체성을, 2부 ‘슬픔의 문신’ 21편의 글은 시·소설·영화·노래에 대한 리뷰, 3부 ‘우리는 인간인가’의 19편의 글은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이었다. 평론 「지식인 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구상」으로 1980년대 ‘민족문학논쟁’을 이끈 그에게 “나의 시대에 문학은 혁명과 동의어였고, 그렇지 않은 문학은 내게 허접쓰레기나 마찬가지였다.”(244-245쪽)
표제글 「부끄러움의 깊이」는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었다. “조직사건과 연루된 ‘좌익사범’ 딱지가 붙었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검거와 투옥의 전 과정에 걸쳐 고문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양심과 사상에 대한 심각한 굴욕과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그것은 지금도 다시 떠올리기 힘든 생애의 가장 끔찍한 체험이다.) 그리고 그 굴욕과 좌절의 체험은 평생 ‘부끄러움’의 형태로 남아 전 생애의 그늘이 된다.”(133-134쪽)
故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 20일이라는 장구한 감옥 생활을 이겨냈다. 저자는 1980년 겨울, 비합법 학생운동 ‘무림(霧林)사건’에 연루되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끔찍한 고문에 시달렸다. 2년8개월의 독방 징역을 살았다. 「나의 영원한 배후, 이원주 형의 영전에」는 선배의 부음을 받고, 그시절 고문에 못 이겨 이름을 불을 수밖에 없었던 무참한 심경을 적어 내려갔다. ‘다 늙은 호위무사가 주군의 딸에게 대를 이어 시대착오적 충성’(280쪽)을 바친 박근혜 정권의 비서실장 김기춘의 재판이 끝났다. 박정희 총통제 유신헌법 초안자, 1977년 재일동포 유학생간첩단 조작사건, 지역감정을 부추 킨 김영삼 대선후보 부산 초원복집사건, 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박근혜 정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그의 인생 자체가 이 땅의 암울한 파시즘이었다.
무소불위의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으로 진보주의자들을 파리 목숨처럼 사냥했던 그는 참으로 비열했다. 나찌정권 전범1급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며 한나 아렌트는‘악의 평범성’을 말했다. 하지만 김기춘은 평범하다 못해 요즘 애들 말로 찌질했다. 늙음을 팔아가며 재판정에 불구속 기소와 감형을 애원했다. 진보주의의 부정 정신은 기본적으로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세월호 참사 700일의 「이 깃발 아래서」에서 문학평론가는 말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라는 말은 억울하게 수장된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애도하자는 말이 아니다. 미안하지만 우리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 우리 자신도 속절없이 침몰 중이기 때문이다.”(276쪽) 마지막은 시인 김해자의 「피에타」(136쪽)의 전문이다.
인천항에서 낯선 이 포구까지 / 오는 데 수십 일이 걸린 데다가 / 그 사이 몸은 다 식고 / 손톱도 다 닳아졌으니 / 삼도천이나 건넜을까 몰라 / 구조된 것은 이름, 이름들뿐 / 네 누운 이곳에 / 네 목소리는 없구나 / 집에 가자 이제 /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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