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아, 입이 없는 것들
지은이 : 이성복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집 :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산문집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시론 : 『극지의 시』, 『불화하는 말들』, 『무한화서』
내가 지금까지 잡았던 시인의 책들이다.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으로 『호랑가시나무의 기억』(문학과지성사, 1993)이후 10년 만에 펴낸 시집이었다. 일부러 묵은 시집을 찾은 것은 순전히 시인 유용주의 산문집 『쏘주 한 잔 합시다』를 읽고 난 후였다. 노가다 시인은 쓰라린 기억뿐인 젊은 시절 한 때 『아, 입이 없는 것들』을 잡고 위안을 받았다. 시집은 「물집」,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진흙 천국」 3부에 나뉘어 125편이 실렸다.
80년대는 ‘혁명과 시의 시대’였다. ‘시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쌍두마차는 황지우와 이성복이었다. 시인은 과감한 시적 문법의 파괴, 세련된 언어의 조탁, 모던한 시풍, 서정적 시적 자아의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쳤다. 그 시절, 황지우와 이성복은 시인으로 드물게 인기 작가였다. 시편들은 대부분 한 쪽의 짧은 분량이었다. 다섯 쪽 분량이 한 편, 두 쪽 분량이 네 편이었다. ‘마라’는 명령형 불안전용언으로 일련번호 26, 27, 28, 29, 30, 31에서 화자의 입을 통해 직접 불려졌다. 시인 강정은 해설 「오, ‘마라’가 없었으면 없었을 ······」에서 “‘마라’는 금지다. 한국어에서 그것은 금지형 명령어로 쓰인다. 동시에 ‘마라’는 유혹이다.(······) 그것은 언어 이전의 언어, 옥타비오 파스의 말마따나 ‘리듬이면서 또한 대립되는 것들을, 삶과 죽음을 한마디로 껴안는 이미지’”(152 - 153쪽)라고 말했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1 여기가 어디냐고」(11쪽)의 전문이다.
붉은 해가 산꼭대기에 찔려
피 흘려 하늘 적시고,
톱날 같은 암석 능선에
뱃바닥을 그으며 꿰맬 생각도 않고
―여기가 어디냐고?
―맨날 와서 피 흘려도 좋으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