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지은이 : 리산
펴낸곳 : 창비
18세기 제정공화국 주간지 세인트누아르 / 또는 문학 미술 음악에서 가장 주목할 성과물에 대한 / 추론적 분석에 의하면 / 방드르디 지역의 반란과 올빼미당원들의 연대기 / 시가 육 밀리 장군의 연설문 / 스마트 세리들의 발랄한 서사시 여행하는 오랑캐들에 대한 채색 판화 등이 있고 // 센티멘털 야간통신 가을호 목차에 의하면 / 꽃보다 말줄임표 애호가 /이토록 잘 쓴 시는 거의 없다 /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등이 있다
시집을 여는 첫 시이며, 표제시인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8쪽)의 전문이다. 시인의 첫 시집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문학동네, 2013)은 유려한 시적 몽상과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가 도드라진 개성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4년 만에 펴낸 시집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개성적인 화법으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신화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가 돋보였다. 나는 이국의 낯선 이름·지명과 생경한 언어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시편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해설은 강정(시인)의 「누구인지 알아도 말할 수 없다」였다. 도발적 이름의 동인 〈센티멘털 노동자 동맹〉의 구성원은 시인 강정, 박정대, 리산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표제의 ‘메르시’는 이란 말(語)로 ‘고맙습니다’라는 의미였다. 시집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박정대 시집 『그녀에서 영원까지』에 실린 「알라 후 아크바르」에 달린 각주로 간신히 알았다.시집은 1부 29편, 2부 21편으로 50시편이 실렸다. 부를 구분하는 기준은 차례 중간에 뜬금없이 ‘누가 오래된 사원의 벽에 이마를 대고 서 있다’라는 작은 글씨체였다. 이는 「당신의 루주는 언제나 붉지 않다」(70 - 72쪽)의 6연이기도 했다. 시집의 다섯, 여섯 번째 시의 제목은 똑같이 「도문대작」이었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은 조선 광해군 3년(1611년)에 허균(許筠)이 전국 8도의 식품과 그 산지에 관해 기록한 책의 제목이었다. 두 번째 「도문대작」(16 - 17쪽)의 2·3연이다.
전라도 함열 땅에서 유배를 살던 허균은 오랜 거친 음식에 지쳐 / 언젠가 먹어보았던 음식의 이름들을 하나씩 적어보았지 // 그렇게 모인 글들은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신다는 뜻의 / 도문대작이라는 문집으로 엮어졌다네
「눈 내리는 백무선」(56쪽)은 한 면을 통째로 비워두고 맨 끝에 한 마디를 새겨 넣었다. ‘멀다’ ∥시인의 말∥ 1연은 11번째 시의 제목이기도 했다.
가난하고 아름다운 사냥꾼 딸이꿈을 헐어전나무에 물을 주고큰 배로 만들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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