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제18회 유심작품상 수상문집

대빈창 2020. 11. 11. 07:00

 

책이름 : 제18회 유심작품상 수상문집

엮은이 : 만해사상실천선양회

펴낸곳 : 인북스

 

전날 시인한테 전화를 넣었다. 시월도 다 저물어가고 있었다. 해가 짧아졌다. 아침 배는 화도 선수항에 닿았다. 여우고개를 넘어 소담마을에 들어서니 시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사람 만나기가 꺼려지는 코로나-19 시국에서 안전한 섬에 사는 친구를 위해 시인은 내내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주문도 첫 굴이 반관씩 든 굴통 두개를 시인 손에 건넸다. 박광숙 선생은 서울에 올라가셨다고 한다. 오랜만에 섬을 나선 나를 위해 시인 부인은 병원 예약 시간을 뒤로 물렸다고 했다. 은암재(隱巖齋) 현판을 올려다보는 나에게 시인이 책 한 권을 건넸다.

 

〇 〇 〇 님께 / 2020. 10. 28 / 함민복 올림

 

독립운동가·불교사상가, 「님의 침묵」의 탁월한 시인 만해 한용운(1879 - 1944)은 3·1운동 한 해 전인 1918년 9월 불교사상을 담은 잡지 『유심』을 창간했다. 90년이 되던 해 무산 조오현 스님은 시 전문지 『유심』을 복간했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문학인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18회를 맞았다. 2003년부터 시, 시조, 평론 분야로 나누어 수상자를 선정, 시상했다. 올해 유심작품상 시상식은 지난 8월 11일 강원 인제 동국대 만해마을에서 열렸다.

수상작은 시詩 부분 함민복의 「악수」, 시조時調 부문 박시교의 「무게고(考)」 평론 부문 수상 저서는 이승하(시인·문학평론가)의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문단의 원로께 드리는 특별상은 시인 오탁번이었다. 시인의 집 은암재(隱巖齋)는 강화도의 천년고찰 전등사를 품은 정족산자락에 안겼다. 언제인가 시인이 자랑삼아 말했던 새들이 물 마시러 놀러오는 작은 연못이 거실과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손바닥만한 텃밭과 단풍나무 한 그루와 그리고 길상이(진돗개 트기, 시인의 고려인삼센터 가게 이름)가 낯선 나를 보고 멍멍 짖어댔다. 마지막은 시부분 수상작 함민복의 「악수」(15 - 16쪽)의 전문이다.

 

하루 산책 걸렀다고 삐쳐 / 손 내밀어도 발 주지 않고 돌아앉는 / 길상이는 열네 살 // 잘 봐 / 나 이제 나무에게 악수하는 법 가르쳐주고 / 나무와 악수할거야 / 토라져 / 길상이 집 곁에 있는 / 어린 단풍나무를 향해 돌아서는데 // 가르치다니! // 단풍나무는 세상 모두와 악수를 나누고 싶어 / 이리 온몸에 손을 달고 / 바람과 달빛과 어둠과 / 격정의 빗방울과 / 꽃향기와 / 바싹 마른 손으로 젖은 손 눈보라와 / 이미 / 이미 / 악수를 나누고 있었으니 // 길상아 네 순한 눈빛이 / 내게 악수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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