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서쪽 바다의 작은 섬 이야기
지은이 : 우석훈·홍인희·안홍민
펴낸곳 : 글누림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는 그동안 ‘역사의 길’ 시리즈로 다섯 권을 펴냈다. 총서는 인천의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그 안에 녹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3권은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항일 투쟁을 벌인 인천 투사들을 다룬 『잊을 수 없는 이름들』, 5권은 한국전쟁 희생자들과 평화를 염원하는 『인천과 한국전쟁 이야기』였다. 총서의 1권 『교동도』, 2권 『석모도』에 이은 4권으로 강화도 부속섬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였다. 저자 3인은 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인천문화유산센터 연구원으로 3개의 장을 나눠 집필했다.
서도면(西島面)에 서도(西島)는 없다. ‘서쪽에 있는 섬’이란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서도군도(西島群島)는 사람 사는 섬은 4개로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 말도와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은 9개로 은염도, 분지도, 수시도, 용란도, 수리봉, 우도(遇島), 비도, 석도, 함박도가 섬 무리를 이루었다. 1장 ‘가깝고도 먼 서쪽 섬 이야기’는 주문도(注文島), 볼음도(乶音島), 아차도(阿次島), 말도(唜島)의 역사와 문화를 담았다. 2장 ‘옛 기록에 보이는 서도면’은 지지(地誌)에 나타난 서도면 섬들, 3장 ‘서도면 사람들, 그 믿음의 세계’는 신앙과 설화에 관련된 흔적들을 찾았다.
옛 기록에 가장 먼저 나타난 섬은 볼음도로 『高麗史』에 파음도(巴音島)로 표기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주문도, 파음도, 말도 그리고 아차도로 유추되는 ‘옆에 작은 섬’등 서도면의 사람 사는 섬 4개가 처음 나타났다. 『여지도서輿地圖書』가 간행된 18세기 중엽 서도의 총 인구는 1,052명이었다. 현재 서도면의 인구수는 640여명뿐이었다. 조선시대 서도의 섬들(주문도, 볼음도, 말도)은 말목장으로 운영되었다. 한양을 지키는 해상 방어기지로 수군진(水軍鎭)과 봉화대가 설치되었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으로 1953년 그어진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 Line)은 서도의 섬들을 바다를 눈앞에 두고, 갯벌에서 조개를 잡거나 논밭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조용한 섬마을로 바꾸었다.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 지 15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그런대로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책은 『江華史』와 『西島面誌』에 많은 빚을 졌다. 섬마다 토박이 어르신네를 인터뷰했다. 편집의 오류인지, 사실 확인의 미흡인지, 내가 아는만큼 사실을 덧붙여야겠다. 주문도를 이야기하는 책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앞장술의 해당화 군락을 장관으로 손꼽았다. 하지만 야생 해당화는 눈을 씻고 봐도 보기 힘들었다. 해당화 뿌리가 성인병에 특효라는 소문은, 극성스런 이들의 손에 자생 해당화가 남아날리 없었다. 50쪽의 해당화 이미지는 주문도 産이 아니다. 묘목을 심어 새로 조성한 군락지였다. 주문도 해당화는 사람 눈에 뜨이지 않는 외진 곳에 한두 포기 수줍게 모습을 감추었다.
‘크지 않은 섬에 논만 해도 55만평이고 이중 40만평은 친환경 농법으로 경작하고 있다’(52쪽) 5년 전만해도 볼음도 경지면적의 3/4인 40만평이 농약을 치지 않는 우렁이농법으로 지었다. 5년 전의 지독한 봄 가뭄은 10만평 볼음도저수지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모내기할 물도 부족한데 논바닥에 열대산 우렁이를 풀어놓는 일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때 볼음도의 친환경농법은 무너졌다. 지금은 안말(볼음2리)의 고집 센 농부 3명이 대략 7만평으로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304호 볼음도은행나무는 800년 전 큰물이 날 때 떠내려 왔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황해도 연백 노지산의 은행나무가 할머니나무로 부부 사이라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소리를 낸다는 전설이 전해졌다. 내가 아는 할머니나무는 석모도 보문사의 은행나무였다. 민중은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은행나무에 의탁했는지 모르겠다.
아차도는 한때 ‘서도의 돈광’이라 불렸다. 파시 때 몰려 든 배가 3 - 400여척에 달했다고 한다. 어족자원이 풍족하던 시절, 어업전진 기지의 중심지는 아차도였다. 그 흔적인가. 지금도 아차도는 고기잡이 어선이 가장 많다. 한창 잘 나가던 아차도의 영광이 시들해지면서 그 아쉬움과 처량함을 빗댄 설화가 만들어졌다. 주문도와 아차도 사이 여의 이름이 ‘큰매여’와 ‘작은매여’ 였다. 여는 물이 밀면 물속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고, 물이 썰면 나타나는 바위를 가리켰다. 생김새가 매를 닮아 이름을 붙였다. 아차도의 꽃치산 형상은 꿩이 알을 품은 형국이었다. 꿩은 매가 무서워 알을 까고 나서 세상에 나설 수가 없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0) | 2020.11.18 |
---|---|
아리랑 (0) | 2020.11.16 |
제18회 유심작품상 수상문집 (0) | 2020.11.11 |
혼자가 혼자에게 (0) | 2020.11.06 |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0) | 2020.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