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대빈창 2020. 11. 18. 07:00

 

책이름 :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엮은이 : 김사인

펴낸곳 : 문학동네

 

나의 책장에 시인 김사인이 지었거나 엮은 여섯 권의 책이 어깨를 맞대었다. 시집은 『밤에 쓰는 편지』(1987), 『가만히 좋아하는』(2006), 『어린 당나귀 곁에서』(2015)와 엮은 책으로 『박상륭 깊이 읽기』(2001), 그리고 詩를 읽고 감상과 독법을 담은 『시를 어루만지다』(2013) 였다. 책은 시인이 넉 달 간 매일 아침 고른 82편의 시와 짧은 감상을 담았다. 다산 정약용은 말했다. “不傷時憤俗非詩也(시대를 아파하고 분노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시인이 신문에 실릴 시를 고르던 때는 나라가 격동의 풍랑에 휩쓸렸다. 북한의 핵무기 실험을 두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막말이 난무했다. 주한 미국의 사드 배치로 중국은 한국을 여행 금지국가로 지정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과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도발을 일삼았다.

시의 선별 기준은 시늉과 겉모양이 아닌 ‘안(內)의 사무침’이 만져지는 시들이었다. 작고 시인들의 글과 시를 대상으로 삼았다. 유일한 예외는 죽은 아들에 바치는 영국가수 에릭 클렙톤(1945 - )의 노래 「천국의 눈물」이었다. 조선시대는 김종서의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이순신의 「난중일기」, 허난설헌의 「哭子」, 최익현의 「請討五賊疏」,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민영환의 「대한애국가」, 박지원의 「念齋記」, 정약용의 「竹欄詩社帖 序」, 16세기 말 조선선비의 죽음에 대한 아내의 편지 「원이 아버지께 올림」이 실렸다. 이외 고려시대의 「動動」, 「광복가」, 구전가요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대한민국헌법 전문」, 해방기 민요 「일본놈 일어서니」, 조선후기 판소리 「흥부가 돈타령」,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국민가요 손로원의 「봄날은 간다」까지.

중국 시와 글은 도연명의 「責子」,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명·청 교체기 김성탄의 「또한 유쾌하지 않은가」, 두목(杜牧)의 「청명(淸明)」. 외국 시인으로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자크 프레베르, 파블로 네루다, 라술 감자토프, 성 프란치스코, 레미 드 구르몽, 폴 베를렌, 존 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리고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까지. 두 편의 시가 실린 시인은 신동엽, 서정주, 정지용 3명이었다. 시인은 서정주, 이순신, 허난설헌, 김기림의 시와 글에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시인이 생각하는 시인은 이러했다. “자신이 처한 시대와 뭇 목숨들의 열망에 깊이 사무쳐, 뜨겁게 때로 섧게 울고 부르짖는 자, 요컨대 시대의 온전치 못함을 ‘잘’우는 것으로 본분을 삼는 자”였다. 시인은 서울대 반정부 유인물 배포사건으로 징역을 살았다. 2년간의 도피생활이 나은 시인의 대표시 「노숙」의 전문이다.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 눅눅한 요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 미안하다 /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 순한 너를 뉘었으니 / 어찌하랴 /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 어떤가 몸이여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촌수필  (0) 2020.11.25
쾌락독서  (0) 2020.11.20
아리랑  (0) 2020.11.16
서쪽 바다의 작은 섬 이야기  (0) 2020.11.13
제18회 유심작품상 수상문집  (0) 202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