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쾌락독서

대빈창 2020. 11. 20. 07:00

 

책이름 : 쾌락독서

지은이 : 문유석

펴낸곳 : 문학동네

 

글 쓰는 판사, 소문난 다독가. 문유석(51, 사법연수원 26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사직을 했다. 법복을 입은 지 23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변호사 개업 생각은 없고, 글 쓰고 여행하며 지낼 거라고 쿨하게 말했다. “상사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처음부터 찰떡같이 말하면 될 것을 굳이 개떡같이 말해놓고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니 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리란 말인가” 2017년 칼럼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에서 부장의 꼰대질에 대한 따끔한 일갈은 헬조선에서 악전고투하는 젊은이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했다.

문유석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일명 ‘사법부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보고서에 이름이 올랐다. 정기 인사에서 그는 서울행정법원이 아닌 서울동부지법으로 발령이 났다. 2014년 8월 세월호 참사 관련 기고문 「딸 잃은 아비가 스스로 죽게 할 수 없다」는 칼럼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시녀를 자임한 사법부는 그를 “과도할 정도로 언론에 기고·저술 활동이 많음. 특정 신문에 연재중인 소설 『미스 함무라비』에서 마치 고등부장 판사가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전형처럼 묘사해 사법부의 신뢰에 흠집이 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음”이 시녀(?)들의 현실인식 수준이었다.

2015년에 출간되어 무려 20만부가 팔린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은 여진이었을 것이다. 강화도서관에서 독서목록에도 없던 책을 운 좋게 발견하고 다른 책들을 뒤로 물렸다. “독서란 원래 즐거운 놀이다. 세상에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 따위는 없다. 그거 안 읽는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그거 읽는다고 안 될게 되지도 않는다.”(14쪽) 책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활자중독자로 살아 온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 낸 독서에세이였다. 자진해서 법복 벗은 판사(?)는 우리 사회가 책을 권하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고 보았다. 책이 입시 또는 인생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성공하기 위한 도구로 강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어렵고 폼 나는 책'을 골라 언급하는 것은 독서문화 확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다닐 도서관 하나만 있어도, 서점 하나만 있어도, 몸을 누일 방구석에 쌓아 둔 내 취향의 책 몇 권만 있어도”(30쪽) 행복한 그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책 고르는 방법은 ‘짜샤이 이론’이었다. 중식당의 기본 밑반찬 짜샤이가 맛있는 집은 음식도 맛있다는 경험에 빗댄 이론으로, 처음 30쪽을 읽어보고 내 취향의 책이다 싶으면 끝까지 잡는 책읽기 방법이었다. 나도 자칭 활자중독자였다. 저자의 책을 고르는 방법에 수긍하지만 나는 현실 여건상 어쩔 수 없이 책을 고르는 천리안을 가져야만 했다. 내가 사는 서해 작은 외딴섬은 도서관도, 서점도 없다. 온라인 서적에서 선별하고, 책을 우체국 택배로 받았다. 간혹 마음에 차지 않는 책이 한두권 섞여 있지만, 책을 고르는 나의 안목은 믿을만했다. 더 이상 나의 방에 책이 차지할 공간은 없다. 배를 타고, 차를 타는 왕복 4시간 거리의 강화도서관에 발걸음을 하기로 했다. 3주의 도서 대여기간 나의 행복을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