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각설하고,

대빈창 2020. 9. 25. 07:00

 

책이름 : 각설하고,

지은이 : 김민정

펴낸곳 : 한겨레출판

 

「작가의 말」을 따라가며 살을 덧붙이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야겠다. ‘스물넷 12월에 시인이 되었고 서른여덟 12월에 첫 산문집을 냈다.’(4쪽) 시인은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첫 산문집 표제 『각설하고,』는 시인의 자존감(?)을 지키려는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이었다. ‘근 14년 동안 100여 편의 시를 썼고 이를 두 권의 시집으로 묶었으며, 근 14년 동안 2천 매 남짓의 산문을 썼고 이를 반타작 내어 이 한 권의 산문집으로 엮는다.’(5쪽) 그렇다면 아직 한 권 분량의 산문이 남아있다. 두 번째 산문집은 아직 감감무소식이었다. 산문집의 초판은 2013년에 나왔다. 두 권의 시집은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열림원, 2005)와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지성사, 2009) 이었다.

책은 5부에 나뉘어 138편의 글이 실렸다. 대부분 1 - 3쪽의 짧은 분량으로 읽기가 편했다. 1부와 2부는 사회적 약자의 슬픔에 눈물 흘리는 가슴 여린 시인이 미더웠다. 3부는 시를 쓰게 된 詩作에서 시를 대하는 마음, 4부는 일상의 찰나에서 시를 건져내는 순간을, 5부는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영감을 준 시와 정의를 내린 소설 구절을 모았다. 김종미의 「새로운 취미」, 박민규의 「낮잠」,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입맞춤」, 김경주의 「나침반」, 윤제림의 「철수와 영희」, 박준의 「마음 한 철」, 박형준의 「사랑」 그리고 ‘태양의 서커스’ OST중에서 「Let me fall」와 시인의 「첫사랑」까지.

표지그림은 폴란드의 화가 빌헬름 사드날의 작품으로 화가의 아내를 그렸다고 한다. 나는 얼핏 보고 시인을 그린 그림인 줄 알았다. 엽기적이고 도발적인 시인의 시에서 연상된 이미지의 착각이었다. 시인의 친구이자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정에 대해 누가 물으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라고 자주 답했다." 문단의 선배와 동료, 후배들을 알뜰히 챙기는 오지랖 넓은 편집자로서 더 바쁜 나날을 사는 시인을 평론가 친구는 측은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시인에게 끌리는 이유는 『문재인 스토리』(모악, 2017) 때문일 것이다. 공저자가 시인 친구 함민복이었다. ‘지난 주말 강화도에 사는 함민복 시인을 만났다. 그와 나는 한 고등학교에서 함께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72쪽) 그렇구나. 고등학교는 안양예고일 것이다. 나는 시인이 편집자로 아무리 바쁘더라도 함민복 시인의 초창기 시집 두 권 『우울씨의 일일』과 『자본주의의 약속』을 하루빨리 재출간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시인 친구의 자필서명이 든 시집을 다시 펼치는 일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열혈 독자는 못 되어도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애독자쯤은 될 것이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문학동네, 2016)을 진즉에 책씻이(얇은 부피의 시집을 책씻이 했다는 거창한 용어가 어울리지 않기는 하다)하고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문학과지성사, 2020)가 책장 한 켠에 시인의 시집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첫 시집이 재출간되면 나는 여지없이 손에 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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