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강정의 나쁜 취향

대빈창 2020. 10. 8. 04:39

 

책이름 : 강정의 나쁜 취향
지은이 : 강정
펴낸곳 : 랜덤하우스코리아

우리나라 나이 스물두 살로 92년도에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 『처형극장』(문학과지성사, 1996)을 25여 년 만에 펼쳤다. 아쉬움에 시인의 책들을 인터넷에서 서핑하다 운 좋게 만난 책이었다. 문 닫은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가 펴낸 2006년 초판본이 여적 살아있었다. 표지그림이 도발적이었다. 빨간 바탕에 왼손엄지손가락 손톱에 네일아트(?)로 표제 『강정의 나쁜 취향』을 입혔다. 책은 2005년 1월부터 1년 여 간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시인 강정의 문화 낯설게 보기 ‘나쁜 취향’」을 한 권으로 묶었다.
첫 글 그룹 들국화의 리드보컬 전인권에서 마지막 글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그룹 핑크 플로이드까지 43꼭지가 실렸다. 책 소개 ‘드물게 재미있고 유쾌한 문화 雜說’이 말해주듯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 부사령관 마르코스, 환경도시 아르코산티(Arcosanti)의 이탈리아 건축가 파울로 솔레리,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천미터급 14좌를 완등한 이탈리아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 5년 동안 매춘에 종사했던 경험을 소설화한 『창녀』의 프랑스계 캐나다 여성 넬리 아르캉에 이르기까지. 가수, 시인, 문화비평가, 록그룹, 영화배우, 영화감독, 정신의학자, 사진작가, 스튜디오 예술 감독, 연극연출가, 팝아트 화가 등 문화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인물들에 대한 평을 5 - 6쪽 분량의 글에 담았다.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동시대 미국 문단의 악녀’라는 닉네임의 문화비평가 수전 손택은 ‘예술을 인간의 이념과 도덕에 복무시키거나 문화를 좋은 것과 나쁜 것, 고상한 것과 천박한 것, 진지한 것과 가벼운 것 등으로 나누는 이분법에 대한 반발’(19쪽)했다. 두 번째 글 꼭지 ‘수전 손택’을 다룬 글 제목이 「나쁜 취향은 죽지 않는다」였다. 다행스럽게 나의 책장에 아직 손대지 않은 수전 소택의  『타인의 고통』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헤비메탈은 각 파트별 악기들의 기술적 노하우를 극대치로 끌어올려야만 가능한 음악이다. 1970년대 초반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등에 의해 처음 양식화된 헤비메탈은 다양한 서브 장르로 분화하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급작스레 퇴보하고 만다.’(163쪽) 강정은 시인이면서 록밴드 비행선의 리드보컬이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군群이 대중가수였다. 들국화의 전인권, 한국 포크송 한대수, 인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The One Night Trio, 민중가요 안치환·노찾사, 월드 퓨전 그룹 쌍깃 프리즈(Sangeet Friends), 록음악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블랙 사바스, 러시아 록의 전설 빅또르 쪼이, 고통과 진실성의 가수 닐 영, 영국 포크가수 닉 드레이크, 아이슬란드 록 가수 비욕(Bjork),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
음악, 문학, 영화, 사진, 건축 등 시인의 ‘문화 낯설게 보기’ 코드에 사로잡힌 인물들에 대해 시인은 말했다. “책에 수록된 내용들은 나를 만들었거나 나를 망친 것들입니다. 공통된 점이 있다면 그들이 자기 방식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뭔가를 해냈다는 것이죠.” 젊은 시절 한때, 뇌세포에 균열이 가는 숙취에 시달릴때면 나는 DIO의 'Holy Diver'의 볼륨을 키웠다. 로니 제임스 디오의 철판을 긁는 듯한 금속성 보컬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해장술이 아닌 해장 헤비메탈이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인간  (0) 2020.10.19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0) 2020.10.16
옥중서신 - 저항과 복종  (0) 2020.09.28
각설하고,  (0) 2020.09.25
스콧 니어링 자서전  (0) 202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