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대빈창 2020. 10. 16. 07:13

 

책이름 :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지은이 : 김언
펴낸곳 : 문학동네

『숨 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한 문장』,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6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은 1998년 『시와 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력 20년을 맞는 2018년 시인은 세 권의 책을 냈다. 시집 『한 문장』과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그리고 시인 22人의 ‘시가 다가오는 순간’을 그린 산문 모음집 『시는 어떻게 오는가』(시인동네) 이었다. 나는 산문집에서 시인의 「그 여름에서 여름까지 짧은 기록 몇 개·3」을 통해 시인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연속해서 출간된 두 권의 시집중에 한 권을 선택했다.
시인친구 함민복은 시력 30년간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두 권을 시집을 내다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집은 2014년 『문예중앙』에 연재된 ‘발바닥 소설’에서 시가 될 만한 글들을 모았다. 시인은 말했다. “이야기가 있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처음 발표할 땐 에세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시라는 장르로 소개됐네요.” 시편들은 행과 연의 구분이 없었다. 긴 시는 3쪽 분량을 차지했다. ‘농축된 언어를 쓰는 시와 이야기가 살아있는 산문’의 특성을 모두 구비한 독특한 시집이었다. 한 편의 시는 엽편소설(葉篇小說)처럼 서사를 구비했다.
시집은 3부에 나뉘어 49편의 시가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조재룡의 「문장-­사유-주체 ―‘쓰다’와 ‘발생하다’의 변증법」이었다. 평론가는 ‘문장이 문장을 발생시키는 과정 자체를 실험하는 진술들로 가득찬 시’로 ‘시집을 오로지 문장의 동력에 따라 빚어낸 한 편의 자율적인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라고 평했다. 해설을 잡으면 시들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까하는 나의 바람은 오히려 더 멀어졌다. 시편들만큼이나 해설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서정시를 편애했던 나의 입맛에 시인은 멀찍이 벗어나 있었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칼맛과 살맛」(12쪽)의 전문이다.

칼맛을 아는 자와 살맛을 아는 자가 만나서 싸웠다. 한바탕 격전을 치르고 나서 칼맛을 아는 자가 말했다. 내 살을 남김없이 바쳐도 아깝지 않은 맛이야. 인정! 그러자 살맛을 안다는 자가 대꾸했다. 내 칼이 제대로 임자를 만났군. 그 맛에 푹 빠져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말이야. 그는 살에 담긴 칼을 빼지 않고 돌아섰다. 살과 칼은 서로를 맞물고 놓지 않았다. 마치 천생연분인 것처럼 각자의 집을 허물고 한 집에 붙어살았다. 칼집이 아니면 살집인 그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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