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대빈창 2020. 9. 17. 07:00

 

 

책이름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지은이 : 최순우
펴낸곳 : 학고재

'내 인생의 책’을 세 권 꼽으라면 서슴없이 이 책을 집어들것이다. 1994. 7. 30. 개정판1쇄 본이 내 손에 쥐어지기까지 어떤 인연이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벌써 25여 년 저쪽의 세월이었다. 누렇게 변한 표지와 책술이 시간의 주름을 말해 주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내 생에서 책을 다시 펼칠 날이 올 것인가. 이번이 세 번째 책읽기였다.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1916 - 1984)는 평생을 한국미를 탐구한 미술사학자로 흔히 ‘영원한 국립박물관장’을 불리었다. 한국미술사 연구의 초석을 닦은 우현 고유섭의 제자로 황수영, 진홍섭과 함께 개성 3걸로 일컬어졌다.
〈학고재 신서 - 1〉로 발간된 책은 20개의 장으로 나뉘어 모두 138개의 꼭지로 이루어졌다. 대부분이 2 - 3쪽 분량의 글로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표제는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따왔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했다.’(78쪽)로 시작되는 미문은 많은 독자들의 발길을 영주 소백산으로 이끌었다.
2017년 제42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우리나라의 13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등재했다. 영주 부석사, 양산 통도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의 7개 사찰이 주인공이었다. 봉황산 부석사(鳳凰山 浮石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절 이름은 무량수전 뒤편의 부석(浮石)에서 유래했다. 표지그림은 부석사 무량수전 앞 안양루의 처마와 일망무제로 펼쳐진 소백산과 태백산의 양백지간(兩白之間)의 산주름이었다. 1500여 년 전 우리나라 화엄종을 전파한 창시자 의상대사의 안목은 봉황산 중턱의 가파른 터에 9층 만다라를 대석단으로 짜임새 있게 공간 배치한 후 절을 앉혔다.
나의 눈길을 오래 잡아 끈 글들은 후반부 7개의 장에 실린 글이었다. 조선 화가들에 대한 짧은 작품설명은 한국화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켰다.  <학고재 신서> 시리즈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차츰 나의 한국미에 대한 인식은 깊어갔다. 그 시절 구입한 책들 중 『崔淳雨 全集』이 여적 자랑스럽다. 가격과 부피가 만만치 않은 책을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덥석 집어 들었다. 「불국사 대석단」의 마지막 문장이 망막에 오래 남았다. ‘그러한 돌각담을 쌓을 수 있는 돌장이의 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돌각담의 아름다움을 대견히 아는 좋은 눈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아마도 그러한 손을 길러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75쪽)
마지막은 책 뒷표지 속면지의 메모 글이다. 그 시절 불만에 가득 찬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젊은 내가 있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박제화된 인간군상
박제의 ‘화려함’을 추종하는 무리들
박제의 상품화로 자기의 권위와 명분을 유지하는 일그러진 또다른 무리
박제의 ‘겉멋’에 휩쓸려 기웃거리는 이 시대의 가장 불쌍한 부류들
남한 천민자본주의의 대표 이미지 여의도의 삭막한 콘크리트 숲
                                                 - 서울방송국에 가서 94. 9. 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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