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달빛가난
지은이 : 김재진
펴낸곳 : 숨쉬는돌
〇 〇 〇 님께 드립니다. 2003년 가을 김재진
내가 시인을 처음 만난 글은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외로운 식물의 꿈」이었다. 자필서명이 쓰인 시집을 책장에서 다시 꺼냈다. 책술에 뽀얗게 먼지가 앉았다. 현관문을 밀치고 후!하고 입김을 불었다. 시선집은 6년 동안 책장의 보이지 않는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시선집 리뷰의 포스팅은 2014년 8월에 있었다. 〔DAUM〕 블로그가 개편되었다. 지난 글들을 새로운 틀에 하나하나 맞추다가 서툰 나의 손짓에 『달빛가난』이 삭제되었다. 놓친 고기가 커 보이는 법이다. 독자센터에 문의했지만 되살릴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인의 자필서명이 들어있는 몇 권 되지 않는 시집이라 아까웠는지 모르겠다. 다시 시집을 펼쳤다.
2003년 가을 전남 순천역 로터리의 어느 카페에서 시선집을 건네받았다. 나는 그때 남도 답사 중이었다. 늦은 시각 순천 조계산 선암사를 둘러보고 시내로 나와 잠자리를 물색하고 있었다. 시집을 건네 이는 초면의 여자였다. 잠시 사무실 알바로 뛰던 그녀의 퇴근길을 바래다주었다. 살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깡마른 그녀의 출퇴근 차편은 불편했다. 그녀는 강화도에서 험하다는 고비고개의 외딴 산촌에 살았다. 나는 퇴근길을 에돌아서 그녀를 내려주고 김포로 향했다. 그녀는 애니메이션 작가의 꿈을 꾸고 있었다. 생일날 칼라 프린트를 그녀에게 선물했다. 시집을 건넨 이는 그녀가 사회에서 만나 따르던 언니였다. 여행을 즐기는 언니이니만치 잘 맞을 것 같다고 그녀가 말했다.
시선집은 부 구분없이 69 시편이 실렸다. 발문은 20세기 말 대구 일원의 동인이었던 《오늘의 시》 멤버 시인 송재학의 「손을 씻고 쓰라」였다. 시인의 다른 면을 새롭게 알았다. 그는 시를 쓰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는다고 했다. 이를 뭐라 불러야할까. 시를 대하는 시인의 염결성을 부러워해야하나, 아니면 까탈스러운 결별증인가. 시인은 봄가을로 히말라야와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시선집 후반은 히말라야, 명사산, 파슈파티나트, 안나푸르나, 바라나시, 얌드록초, 세라 사원, 천산, 시가체, 드레풍 사원, 린포체 등 시인의 발길이 머물렀던 인도, 티베트, 실크로드 시편들이었다. 여행길에서 만나 시선집을 전해주었던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세월이 많이 흘렀다. 6년 전 포스팅한 글은 표제시 「달빛가난」을 인용했다. 오늘은 「다비」(27쪽)의 전문이다.
소라 껍데기를 주워 귀에 대어보면
바다 소리가 난다.
불길 속에 마른 솔방울을 넣으면
쏴―아 하고 솔바람 소리를 내며 탄다.
타오르는 순간 사물은 제 살던 곳의 소리를 낸다.
헌옷 벗어 장작 위에 누울 때
나는 무슨 소리를 내며 타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