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밥꽃 마중
지은이 : 장영란·김광화
펴낸곳 : 들녘
벼 / 보리 / 밀 / 기장 / 조 / 율무 / 옥수수 / 수수 / 메밀 / 콩(대두) / 팥 / 동부 / 완두 / 녹두 / 땅콩 / 덩굴강낭콩 / 파(대파) / 달래 / 마늘 / 양파 / 부추 / 오이 / 참외 / 수박 / 호박 / 박 / 딸기 / 시금치 / 아욱 / 배추 / 갓 / 양배추 / 무 / 참깨 / 들깨 / 고추 / 가지 / 토마토 / 감자 / 당근 / 도라지 / 더덕 / 상추 / 우엉 / 쑥갓 / 뚱딴지(돼지감자) / 야콘 / 토란 / 고구마 / 생강 / 감 / 밤 / 배 / 뽕나무 / 잣나무 / 참나무 / 쑥 / 참취 / 밋(잭푸르트, Jackfruit)
부부는 1996년 서울을 벗어나, 1998년부터 전북 무주 덕유산 산골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귀농부부가 펴낸 출판사 《들녘》의 귀농총서로 『직파 벼 자연재배』(2016)에 이어 두 번째였다. 부부 농사꾼이 농사를 지으며 만난 60가지 곡식꽃과 채소꽃을 9년 동안 글과 사진으로 남긴 기록이었다. 저자는 우리 밥상에 매일 올라와 사람을 살리는 곡식·채소 꽃들을 ‘밥꽃, 목숨꽃’이라 불렀다. 책은 70여 가지 밥꽃의 생김새와 구조, 생식 방법 등의 정보를 담았다. 지구상의 육상식물은 총 30만 여 종으로, 26만 여 종이 꽃을 피웠다. 그중 25종 만이 인간이 채식으로 얻는 에너지의 90%를 제공했다.
한여름 뜨거운 볕 / 푸르른 벼 잎 사이 // 이삭 따라 하나 둘 / 벼꽃이 피네. // 꽃잎도 없이 핀 / 실밥 같은 꽃술 // 보일 듯 말 듯 / 실바람에 흔들리누나. // 그 꽃 하나 쌀 한 톨 / 꽃 한 다발 밥 한 그릇. // 벼꽃이 피네 / 목숨 꽃이 피누나.
귀농 농사꾼 20년 차 김광화의 시 「벼꽃」(13쪽)이다. 보통 사람들은 매일 밥을 먹지만 벼꽃이 피고 지는 줄도 모를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쌀나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벼꽃은 꽃잎과 꽃받침도 없이 보잘 것 없는 여섯 개의 수술과 한 개의 암술이 껍질 속에 숨었다. 껍질에 틈새가 생기고 꽃이 피웠다. 수술의 머리 꽃밥이 꽃가루를 터뜨렸다. 짧은 시간 껍질 속의 암술이 꽃가루를 받아들이는 ‘제꽃가루받이’를 했다. 모든 식물은 꽃을 피우기까지 엄청 난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벼꽃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벼는 생식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에너지를 아껴 씨앗(곡식)으로 남겼다. 농부들은 흔히 “이삭이 팬다.”고 말했다. 벼꽃은 이삭 한줄기에 100여 송이의 꽃을 피웠다.
나는 가난한 소작농의 막내아들로 태어 나 어렸을 적부터 학교를 마치면 논밭에서 살았다. 현장노동자로 공장생활을 한 4년여를 제하면 나의 손발에 항상 흙이 묻어있었다. 책에 나오는 70여 가지 작물에서 서너 개를 제외하고 낯이 익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김포평야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름난 곡창지대였다. 처서 무렵이면 경운기 분무기에 연결 된 호스와 노즐로 병해충 방제를 했다. 중고교 시절, 가슴높이까지 올라 온 벼 포기를 헤치며 농약을 살포했다. 밤새 내린 이슬이 마르면서 시작된 일은 오후 서너 시가 되어야 마칠 수가 있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땀에 전 옷은 벼꽃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썼다. 사진을 보니 벼꽃 수술이었다.
한반도의 벼농사는 2020년 경자년(庚子年)을 기점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이날까지 살아오며 나는 강력한 태풍 3개가 나래비를 서서 한반도를 강타하는 참담함을 경험하지 못했다. 매년 한반도에 닥치는 서너개의 태풍에서 강화도는 안전지대였다. 서해를 따라 올라오는 태풍은 10년에 한 번 정도 부닥치는 현상이었다. 2019년(己亥年) 9. 7. 태풍 링링이 강화도를 오른쪽에 두고 북상했다. 그럴 수도 있는 이상현상이었다. 2020년 8. 27. 8호 태풍 바비가 서해안을 따라 올라왔다. 9. 3. 9호 태풍 마이삭이 동해안을 따라 올라갔다. 9. 7. 10호 태풍 하이선은 초강력 태풍으로 한반도 중심을 관통한다는 일기예보로 온 나라가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다. 열흘도 안 돼는 짧은 시간에 강력한 태풍 3개가 연달아 한반도를 강타했다.
현재 벼농사는 벼알이 여물어가는 등숙기였다. 짧은 시간 태풍의 강한 바람에 두 번이나 노출된 벼알은 까맣게 변색되었다. 흑수현상이었다. 내가 사는 섬은 바닷물이 벼포기에 끼얹어져 피해가 더 심했다. 하이선이 할퀴고 갈 들녘 풍경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그렇다. 까맣게 변색된 벼알을 메 단 벼 포기는 강풍을 못 이기고 물속에 고개를 쳐 박을 것이다. 작년 링링이 할퀴고 간 들녘의 벼 포기는 물속에서 싹이 터 엉키는 바람에 콤바인이 논에 들어서지도 못했다. 벼알은 물속에서 2 - 3일이면 싹을 틔웠다. 뿌리가 땅속에 있는 채 벼알이 다시 싹을 틔우는 현상을 ‘수발아(穗發芽)’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