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전라도 섬맛 기행

대빈창 2020. 8. 28. 07:00

 

 

책이름 : 전라도 섬맛 기행

지은이 : 강제윤

펴낸곳 : 21세기북스

 

하의도-낙지냉연포탕 / 가거도-고구마수제비 / 가란도-물김석화볶음 / 기점도-고구마묵 / 장산도-기젓국 / 도초도-감성돔젓국 / 반월도-보리숭어구이 / 신의도-함초생선찜·함초돌게장 / 암태도-마른숭어찜 / 우의도-약초막걸리 / 임자도-산도랏민어탕 / 지도-낙지찹쌀죽 / 흑산도-홍어껍질묵·우럭돌미역국·장어간국 / 관매도-솔향기굴비찜 / 대마도-황칠나무보양탕 / 모도-꽃게초회 / 진도-찹쌀홍주 / 노화도-말린복곰탕 / 보길도-전복포 / 생일도-배말구이 / 소안도-마른복찜 / 완도-전어덮밥 / 나로도-대삼치회·대삼치구이 / 연홍도-쏨뱅이무침·청각오이냉국 / 개도-시금치꽃동회무침 / 거문도-한가쿠칼칫국 /금오도-도다리쑥국·성게알찜 / 안도-백년손님밥상 / 탄도-찰감태무침 / 장도-피굴

 

책은 전라도 30개 섬의 37가지 토속음식 소개서였다. 내용은 섬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적 모습이 주(主)였다. 음식 레시피는 대충 쓰인 것 같았다. 재료의 양을 따지는 계량, 조리 시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없었다. 그렇지만 섬 음식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섬의 할머니, 어머니의 손에 익은 조리 방식에서 우러나온 토종음식이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작은 외딴섬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 지 10년을 훌쩍 넘겼다. 나는 섬에 살면서 고구마묵과 어묵을 알았다. 나에게 묵은 도토리묵이었다. 태어나고 자란 김포의 가을이 깊어 가면 어머니는 도토리를 주우러 산을 오르셨다. 말린 도토리나 상수리를 멧돌로 껍질을 벗겨 녹말을 내렸다. 기점도처럼 주문도도 고구마로 전분을 내려 묵을 쑤었다. 주문도의 어묵은 서해 섬들에서 만들어 먹는 벌버리묵이었다. 박대껍질로 만든 묵이었다. 묵의 탄력성은 젓가락으로 도저히 집을 수 없었다. 수저로 양념장을 묵 그릇에 끼얹은 후 숟가락으로 하나씩 떠 입안에 넣었다. 흑산도는 홍어껍질로 묵을 내렸다.

암태도의 마른숭어찜 레시피를 보며 나는 서도(西島)의 말린 원지를 떠올렸다. 남도에서 숭어로 불리는 원지는 여기서 가숭어였다. 모내기철이 다가오면 원지가 뻘그물에 몰려들었다. 이때는 파리가 꼬이지 않아 쉬를 슬 염려가 없었다. 수십 마리의 말라가는 원지가 커다란 연처럼 장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흑산도 돌미역국을 보며 삼십여년 전 제주도 여행길에서 한끼 식사 초대를 받아 밥상에 놓였던 오징어미역국을 떠올렸다. 아는 것이 병이었다. 임산부들이 꺼리는 음식 중 하나가 비늘 없는 고기였다. 산모가 해산 후 처음 입에 넣는 미역국에 오징어를 넣다니. 내륙인의 편견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섬을 아우르는 면(面) 단위는 진도군 조도(鳥島)면이었다. 새떼처럼 많은 섬들로 이름이 붙여졌다. 무려 179개의 섬들로 유인도가 37개, 무인도가 142개였다. 자치단체인 옹진, 강화, 남해보다도 많았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일군의 문학도들이 수학여행을 하조도(下鳥島)로 떠났다. 수산고 출신의 동문의 고향이 하조도였다. 마음이 여렸던 그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야간학교를 학창시절 내내 이끌었다. 그는 첫 시집을 내고, 이른 나이에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마지막은 책의 지은이인 사단법인 섬 연구소 소장, 인문 학습원 섬 학교 교장, 시인 강제윤의 시로 삼았다.

 

인생이 나를 저버린 날에도 / 섬으로 갔다. /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날에도 / 섬으로 갔다. / 그 수많은 생애의 날에 / 나는 섬으로 갔다. // 속절없이 그리운 날에도 / 섬으로 갔다. / 오갈 데 없는 날에도 섬으로 갔다. / 해 다 저문 저녁에도 섬으로 갔다. / 술이 덜 깨 숙취에 시달리던 날에도 / 섬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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