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녹색평론 통권 173호

대빈창 2020. 8. 24. 07:00

 

책이름 : 녹색평론 통권 173호

지은이 : 녹색평론 편집부

펴낸곳 : 녹색평론사

 

〔녹색평론〕에 한결같은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간단한 안내드리고자 메시지 올립니다. 선생님께서 후원회비를 보내주고 계신 녹색평론사 대표 은행계좌의 예금주 명의가 ‘김정현’으로 바뀌었습니다(계좌번호는 동일합니다). 해킹이며 피싱이며 무서운 일들이 많아 혹시나 놀라시지 않을까 해서 노파심에 메시지 남깁니다. 궂은 날씨에 건강 잘 돌보시고 즐거운 주말 맞으시길 바랍니다. ―녹색평론 독자부

 

‘생태사상가’ 김종철(1947 - 2020) 선생이 지난 6월 25일 향년 73세로 돌아가셨다. 선생은 영남대 교수로 있으면서 사재를 털어 1991년 11월 생태·인문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했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통권 173호, 2020년 7 - 8월호)까지 한 호의 결호도 없이 발행·편집인으로 자리를 지키셨다. ‘근대문학의 종언’으로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 일본의 문학평론가·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이 선생에게 왜 문학을 그만두었는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자신이 문학을 했던 것은 문학이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적 문제까지 온갖 것을 떠맡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조차도 떠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언제부터인가 문학이 협소한 범위로 한정되어 버렸다. 그런 것이 문학이라면 내게는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그만두었다.”

내가 선생의 글을 가장 먼저 접한 책은 『녹색평론선집 1』(1993)이었다. 함양 덕유산자락에서 유기농 오미자 농사를 짓던 후배의 외딴 오두막이었다.  이것도 인연일까. 선생의 고향은 경남 함양이었다. 나는 『녹색평론』 통권 100호(2008년 5 - 6월호)부터 정기 구독했다. 정기구독자에서 후원자로 한 발 더 나아갔다. 2010년 3월부터 후원금을 정기 이체했다. 선생이 글을 쓰시거나 옮긴 책 전부를 손에 넣었다. 선생의 책이 책장 한 칸을 차지했다. 아직 읽지 못한 두 권의 책이 나의 손길을 기다렸다. ‘인간·흙·상상력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비평집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삼인, 개정증보판)과 근대의 어둠에 맞서 삶-생명을 근원적으로 옹호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 여덟 사람에 대한 에세이 『대지의 상상력』(녹색평론사, 2019)이었다. 엊그제 선생의 생전 마지막 저서였던 생태사상론집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녹색평론사, 2019)를 책씻이했다.

선생은 2004년 『녹색평론』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을 그만 두셨다. 출판 영역을 넓히고 생태 강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대구에서 서울로 출판사를 옮겼다. 선생은 자책하셨다. 생태운동을 하면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자신은 글과 삶이 다르다고. 몸이 많이 편찮으셨는가 보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책을 내면서」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 19 사태로 자발적 칩거를 하며 쓰신 짧은 글모음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이 마지막 글이 되었다. 위 메시지는 카톡이 아닌 문자였다. 나는 이를 상업성 광고를 싣지 않고 고난을 길을 묵묵히 걸어 온 『녹색평론』의 순진성(?)으로 보았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는 알았다. 한국 사회의 주변적 이슈인 생태·인문 정기간행물 『녹색평론』을 30여년 이끌어 오시면서 가장 힘들어하신 부분이 필자를 구하는 일이었다. 온 가족이 두 달동안 모든 힘을 쏟아 『녹색평론』을 펴냈다는 것을. 단행본 『아담을 기다리며』, 『농부와 산과의사』, 『케스 매와 소년』을 번역한 김태언은 선생의 부인이셨다. 아들 김형수는 어머니와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를 공역했고, 김경인과 함께 『삶을 위한 학교』도 번역했다. 아! 책을 펼치면 자주 눈에 뜨였던 김정현은 딸이었다. 『녹색평론』에 실린 대부분의 글을 아버지, 남매 세 가족이 번역했다. 이제 선생은 떠나셨고, 남매의 몫으로 남았다. 나의 생태적 사고를 이만큼 깊이를 더해 준 선생의 가시는 길에 해드릴 것이 없었다. 읍내에 나간 김에 은행 문을 밀쳤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의 후원금 액수는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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